소속감 결여… 개업 용이한 진료과 선택 등 문제
‘의사양성학원’전락… “한국 의학교육 10년 퇴보”
의대교수들 “제도 실패 인정하고 인재양성 대책 필요”
이달 초 교육부가 동국대 의대 복귀를 승인했다. 이로써 의학전문대학원을 유지하고 있는 대학은 강원대 제주대 차의대 건국대 등 4곳으로 줄었다. 전국 41개 의대 중 이들 대학을 제외한 37곳이 의대로 복귀한 것이다. 2005년 경희대, 건국대 등 10개 의대가 의전원으로 전환해 신입생을 뽑은 지 10년 만에 제도 자체가 사실상 붕괴됐다. 27개에 달했던 의전원은 왜 찬밥신세가 됐을까.
# “전공의 지원자가 이렇게 없어? 큰일이네.” 지난해 의대 학장보직을 맡은 한 교수는 인턴ㆍ레지던트 등 전공의 모집에 애를 먹었다. 비록 지방에 병원이 있어도 모교 의대 졸업생들이 있어 전공의 수급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의전원 전환 후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이곳 의전원 졸업생의 60%는 서울 등 수도권 출신으로 의사국가시험(의사국시)에 합격한 후 대학에 남지 않고 대부분 ‘고향 앞’으로 가버렸다.
#“의사 직업을 돈 벌려고 선택하면 후회할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의대 교수는 의전원 강의시간에 속마음을 솔직히 털어놨다. 하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다른 대학에서 공부하고 군대까지 다녀온 이들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먹히겠습니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의전원에 입학한 겁니다. 의전원은 기초 의학자를 육성하는 곳이 아닌 의사양성 학원으로 변질됐습니다.”
소속감 없고, 개원 쉬운 진료과 선택
이들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의전원에서 의대로 복귀한 대학들은 “의전원 제도 도입 취지는 좋았지만 사실상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의대 교수는 한결같이 의전원 학생들이 의예과 학생과 달리 정체성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의전원 체제에서 의대로 복귀한 한 대학 학장은 “솔직히 의전원 학생들은 소속감이 없다”면서 “기존에 졸업한 대학보다 못한 대학에 들어오면 졸업 후에도 기존 대학 출신임을 강조한다”고 씁쓸해했다.
한 의대 교수는 “의전원을 다니면서도 기존 대학 출신끼리 모임을 갖는 등 2중 플레이하는 학생이 많다”면서 “소속감이 없다 보니 졸업하면 남남이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학업성취도 문제다. 교수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까지 다녀온 이들이 의전원에 입학해 의학을 공부하는 것 자체가 힘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육부가 2010년 의대ㆍ의전원을 병행하는 대학의 교수 61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교수들은 학업성취도 면에서 의대생이 우수하다는 응답이 44%로 의전원생(19%)보다 높았다.
설사 전공의로 병원에 남아도 응급의학과, 외과 등 진료과를 선택하지 않는다. 가정의학과, 성형외과 등 개업이 쉬운 진료과를 택하기 때문이다. 경제 침체로 국내 개업이 어려워지자 의사면허 취득 후 중국 등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이도 많다. 한 의대 교수는 “인턴, 레지던트까지 마치면 마흔 살이 되는 이도 많아 처음부터 병원에 남을 생각도 하지 않고, 개업도 어려우니 해외로 나가는 이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우리사회에서 의사라는 직업이 그나마 존경 받고 안정된 직업이었는데 해외까지 나가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의전원이 의학교육 10년 퇴보시켜”
의전원이 제도 도입 취지와 달리 목표를 잃은 가장 큰 원인으로 교육부의 수요예측 실패가 꼽힌다. 한 의대 학장은 “의대 입시 가열을 막고 기초 의학자를 육성하겠다고 장담했지만 3,000명에 이르는 의전원 출신 중 기초의학을 하고 있는 이는 10명도 되지 않는다”면서 “의전원 제도 도입 후 10년간 우리나라 의학교육은 10년 퇴보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의대뿐 아니라 공대 등 이공계 전체 교육이 황폐화됐다”면서 “의대 입학이 목표인 학생들을 4년간 허송세월을 하게 만든 것이 의전원 제도”라고 꼬집었다. 의전원 제도 도입 후 이공계 대학생들이 관련 학문을 등한시하고 의전원 입학준비에만 몰두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강대희 서울대 의대 학장은 “의전원 당시 신입생 면접을 보면 학생들이 제대로 된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기초의학이 아닌 임상으로 쏠렸다”면서 “의전원 제도 실패를 교육당국이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전원 제도 실패를 교훈 삼아 현재의 의대 교육도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강 학장은 “고교를 졸업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의대생들은 수능에 길들어져 있을 뿐 인문ㆍ사회 등 인간과 사회를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수능만으로는 학생의 인격과 자질을 검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 한국 의료를 책임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의전원과 같은 획일적 제도에서 탈피해 의대에 신입생 선발에 자율권과 재량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ㆍ사진=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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