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후폭풍이 미국의 대유럽 전략 수정까지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구축된 서구 안보체제에 균열이 생기면서 그 동안 아시아 동맹을 중시했던 미국의 대외정책이 ‘피봇 투 유럽’(pivot to Europe)으로 급전환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특수 동맹이었던 영국의 자리를 독일이 대체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26일 뉴욕타임스(NYT)는 사설을 통해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은 서방의 거미줄 같은 동맹관계를 약화시키며 외교에서도 깊은 파장을 낳을 수 있다”며 “이것은 아시아의 동맹 구축에 몰두해왔지만 다시 한번 유럽, 대서양 동맹을 우선시하고 컨센서스를 구축해나가야 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시험의 순간”이라고 밝혔다. NYT는 “(그렇지 않으면) 서방 주도의 국제 질서에 대항해온 러시아와 중국이 최대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국제사회는 영국이 EU에서 발을 빼면서 러시아 견제에 구멍이 생기는 등 유럽 안보지형이 흔들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물론 영국이 EU와 결별하더라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관계까지 정리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나토와 EU 및 미국과의 가교 역할을 해 충실히 해 온 영국의EU이탈은 아무래도 힘의 공백을 부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짐 스타브리디스 나토군 전 최고사령관은 “미국은 앞으로 영국이 세계적인 문제에서 덜 효과적이고 덜 신뢰가는 파트너일 것이라는 사실을 직면해야 한다”며 “불행히도 미국과 영국과의 관계는 덜 특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아시아회귀전략만 고집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더구나 브렉시트 여파로 유럽 각국이 분열로 치닫는다면 미국의 세계전략도 위태롭게 된다. 이에 NYT는 “미국과 유럽이 소원해지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미국은 다른 두 강대국인 독일과 프랑스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국을 대체할 미국의 파트너로는 우선 독일이 꼽히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행정부에서 국무차관을 지낸 니콜라스 번스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유명한 말인 ‘내가 유럽에 전화를 걸 때 누구에게 하지?’에 대한 답변은 이제 독일 총리실로 정해졌다”며 “이는 우리가 독일과의 관계에 더 투자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즈(FT)는 이날 “미국은 이미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전부터 독일 쪽으로 기울었다”고 보도했다.
다만 미국과 독일의 파트너십에는 양국 정부의 정책적 이견이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그리스 경제 위기 당시 독일은 그리스 채무탕감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등 재정정책에서 미국과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 독일은 안보 현안에서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 미국 정가에서는 독일이 미국과 영국, 프랑스 다음으로 많은 나토 방위비를 분담하면서 실제 군사작전에서는 영국과 프랑스의 눈치를 보며 소극적이라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때문에 독일이 끝내 미국과의 파트너십에서 주저한다면 프랑스가 다음 주자로 거론된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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