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가 중국 주도로 설립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자문위원(고문)에 취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와 다른 입장에 서는 등 돌출행동을 잘해 ‘우주인’이란 별명이 붙은 그의 이번 처신에 대해서도 우익진영이 불편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27일 지지통신에 따르면 AIIB는 세계 각국의 전직 정상 10명 정도로 구성되는 국제자문위원회를 설치하며, 하토야마는 그 일원으로 참가하게 된다. 중국 측의 조치는 AIIB에 가입하지 않은 일본과 미국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란 평가다. AIIB 국제자문위원회는 올 가을 첫 모임을 갖고 진리췬(金立群) AIIB 총재 등 집행부에 조직 운영상의 여러 조언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전해졌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26일 체류중이던 베이징에서 일본 기자들과 만나 “진 총재가 비가맹국인 일본 외에도 미국의 인사들도 영입하고 싶다는 입장을 전해왔다”며 AIIB의 융자 안건 등에 대한 일본 기업의 관여를 촉구해나가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민주당 정권 당시 총리였던 그는 이후 중국이나 한국에 대해 유화적 태도를 보인다는 등의 이유로 우익진영의 표적이 돼 왔다. 지난해 8월에는 서울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찾아 추모비에 헌화하고 “식민지시대 가혹한 고문을 사죄드린다”고 무릎을 꿇고 합장하는 모습이 일본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이날도 일본 몇몇 방송에선 그의 행보를 비꼬는듯한 화면을 내보냈다.
이런 가운데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관방 부(副)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보도된 내용은 알고 있으나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본인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며 일본 정부와 무관한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직 총리가 AIIB의 요직에 취임하는 게 타당한지를 묻는 질문에 “의원도 그만둔 분이다. 한 사람의 개인으로 행동하는 것에 언급을 자제하고 싶다”고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AIIB 발족 당시부터 일본도 참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고, 지난해 11월 AIIB 설립 준비 사무국장이던 진 총재를 베이징에서 만났을 당시 자문위원 타진을 받고 수락했다고 지지통신이 전했다. 올 1월 공식 출범한 AIIB엔 총 57개 나라가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미일 양국은 ‘중국의 일방적 운영’에 대한 우려 등을 이유로 불참 의사를 나타내고 있는 상태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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