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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해영’ 귀에 밴 "헐"소리의 비밀

입력
2016.06.2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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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 속 음향감독으로 나오는 가수 겸 배우 에릭은 촬영을 위해 옷깃 스치는 소리 내는 법 등을 드라마 음향감독에게서 직접 배웠다. 에릭은 "영화 '봄날은 간다' 속 유지태가 연기한 음향감독과 비교해 좀 더 전문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tvN 제공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 속 음향감독으로 나오는 가수 겸 배우 에릭은 촬영을 위해 옷깃 스치는 소리 내는 법 등을 드라마 음향감독에게서 직접 배웠다. 에릭은 "영화 '봄날은 간다' 속 유지태가 연기한 음향감독과 비교해 좀 더 전문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tvN 제공

‘흙수저’ 오해영(서현진)의 아린 사랑이 공감대를 넓혔다면, 소리에 대한 섬세한 접근은 드라마에 새로움을 줬다. ‘미생’(2014)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최고시청률 9.4%)의 인기 요인이다. 빛 들어오는 소리까지 듣는다는 음향감독 설정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한 후시 녹음의 흔적과 예능프로그램 못지 않은 독특한 효과음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종방(28일)을 앞두고 드라마에 얽힌 소리와 관련한 제작 뒷얘기를 살펴봤다.

tvN '또 오해영'에는 난처한 상황마다 까마귀 소리와 함께 “헐”소리가 어김없이 들어가는데 여성 국악인이 구수한 목소리로 녹음했다. 방송 캡처
tvN '또 오해영'에는 난처한 상황마다 까마귀 소리와 함께 “헐”소리가 어김없이 들어가는데 여성 국악인이 구수한 목소리로 녹음했다. 방송 캡처

열 일 하는 ‘카메오’ 효과음… 지상파엔 없는 실험

한 여인이 양손에 짐을 들고 서 있는 사내에게 뛰어가 그의 품에 격하게 안긴다. 자신을 ‘연애 쑥맥’ 취급하며 얕보는, 동성 직장 상사에게 보란 듯이 길거리에서 벌인 도발이다. 사내의 품에 안겨 목에 양 팔을 감은 여인의 머리 속은 온통 불꽃놀이다. 낭만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내의 품을 떠나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뒤돌아 선 여인의 얼굴은 상사의 말 한 마디에 바로 사색이 된다. “저기, 뽕이…” 박도경(에릭)의 발 앞에 덩그렇게 놓인 가슴 보형물을 확인한 오해영(서현진)의 난처한 모습이 웃음을 유발한다. 더 큰 웃음은 다음에 터진다. “헐~” 소리와 함께.

‘또 오해영’에서 ‘열 일’하는 ‘카메오’가 바로 효과음 “헐”이다. 너무 어이 없는 상황을 기다렸다는 듯 팝콘처럼 튀어나오는 소리가 극중 인물의 난처함이나 당혹감을 돋워 재미를 준다. 시청자에겐 감정 몰입을 돕는 미끼가 되기도 한다. ‘또, 오해영’을 즐겨본다는 직장인 박민희(42)씨는 “헐 소리를 듣다 보면 여자들끼리 얘기할 때 ‘그치, 그치?’ 하면서 맞장구 쳐주는 느낌이 들어 더 드라마 속 장면에 빠지게 된다”며 “요즘 나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된다”며 웃었다. 온라인에선 드라마 속 ‘헐 효과음을 찾는다’는 게시글이 적지 않게 올라올 정도로 화제다. 지상파 드라마에선 볼 수 없는 만화 같이 엉뚱한 장치가 시청자에 예능과도 같은 재미와 신선함을 줘 호응을 얻고 있다. 잘 만든 효과음 하나가 열 배우 못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헐” 소리를 넣은 이는 엄기엽 음악감독이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극중 인물이 민망해 하는 상황에서 “음메~” 하는 염소 소리가 나와 재미를 준 것에서 영감을 받아 1년 전 다른 작품에 쓰려고 만들어 놨던 걸 ‘또, 오해영’에 썼다. “드라마가 밝고 경쾌해서”다.

그렇다면 “헐”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굴까. 드라마 속 “헐”은 10~20대가 짧게 내뱉는 것과 달리 호흡이 길고, 구수한 게 특징이다. 엄 감독은 “판소리를 하는 여성 국악인이 녹음했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국악인을 섭외한 건 청년들이 쓰는 인터넷 유행어를 예스럽게 말해 색다른 웃음을 주고 싶어서였다. 스튜디오에서 “헐” 소리를 녹음했던 국악인도 처음엔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어 엄청 민망해했다고. 드라마엔 “오메”란 효과음도 나오는데, 헐 소리를 녹음한 여성 국악인의 목소리로 만들어졌다.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오해영(왼쪽)과 박도경이 소리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tvN제공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오해영(왼쪽)과 박도경이 소리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tvN제공

성형외과 의사에서 음향 감독으로 주인공 직업 바꿔

‘또 오해영’은 남자주인공인 박도경이 음향 감독으로 나오는 만큼 소리에 유독 신경을 많이 쓴 드라마다. 배우들이 소파에 앉을 때 나는 “부욱~” 소리까지 후시 녹음을 해 넣었다. 배우들의 발소리도 촬영 후 덧입혔다. ‘또 오해영’이 다른 드라마와 달리 소리가 풍성하게 들리는 이유다. 박준오 음향감독은 “보통 드라마에 10개(채널)의 소리가 쓰인다고 하면, ‘또 오해영’은 소리가 들어갈 수 있는 최대치인 16개를 모두 썼다”며 “(박도경이)녹음실에서 소리를 만드는 작업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기 위해 에릭은 촬영 전 따로 폴리(Foley, 소리를 만드는 일)작업을 배우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또 오해영’에서 소리는 기억을 잇는 중요한 수단이다. 때론 이미지 보다 특정한 소리로 추억을 더 쉽게 떠올릴 때가 있다. 지난 3월 끝난 드라마 ‘시그널’이 무전기로 현재와 과거를 잇는다면, ‘또 오해영’에선 소리가 박도경을 둘러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단서가 된다. ‘또 오해영’의 박해영 작가는 애초 대본 속 남자주인공의 직업을 성형외과 의사에서 음향감독으로 바꿨다(이로 인해 여주인공 오해영의 직업도 성형외과 상담실장에서 식품 회사 직원으로 달라졌다.) ‘또 오해영’ 제작사인 초록뱀미디어의 박순태 PD는 “작가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음향 작업을 하는 분들을 직접 만나 그 분들의 특성을 취재했고, 작업 과정의 정서적인 측면과 새로움에 빠져 박도경의 캐릭터를 전면 수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도경은 낮과 밤의 소리뿐 아니라 동해와 서해의 파도 소리까지 구별한다. 지나친 과장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현업 음향감독들은 가능한 일이라는 반응이다. 25년 경력의 안익수(53) 음향감독은 “동해, 서해, 남해 파도 소리가 다 다르다”며 “남해는 절벽이 많아 철썩거리는 소리가 세고 서해는 갯벌이 넓게 펼쳐져 동해처럼 파도 소리가 역동적이지 않을 뿐 더러 물이 빠져 나오는 소리가 동해의 모래 사장과 비교해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드라마를 보면 파도 소리를 듣고 서해 을왕리에서 (소리를) 따 왔냐는 장면이 있는데 지명까지 알 정도로 구분은 못하지만 전문가라면 동해, 서해, 남해 파도 소리를 구별한다”고 덧붙였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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