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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선수흡연까지 이해하는 '빌모츠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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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선수흡연까지 이해하는 '빌모츠 리더십'

입력
2016.06.2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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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아버지 어깨 너머로 감독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선수를 다루는 방법, 전술 그리고 각 감독들의 특성 등. 사실 어렸을 때는 귀담아 듣지 않고 별 생각 없이 받아 들였다. 그러다가 아버지께서 1998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맡으시면서부터 감독의 위치와 그들의 어려움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나는 선수 생활을 할 때 감독 말을 잘 들으라는 이야기를 아버지께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만큼 감독이라는 자리가 어렵다는 뜻이다. 프랑스 월드컵 예선부터 본선까지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보며 왜 그 자리가 그렇게 힘든지 느꼈다.

유로 2016에도 감독들의 색깔과 특성이 있다. 나이와 경험이 많은 감독들은 확실히 경기 중에 조용하다. 델 보스케(66) 스페인 감독은 제스처나 말이 거의 없다. 그가 일어나서 무언가 지시하거나 손짓할 때는 스페인 팀이 정말 뭔가를 크게 잘못 하고 있다는 거다.

요하임 뢰브 독일대표팀 감독.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지도력으로 큰 인기를 끌지만 가끔 돌발 행동으로 구설에 오르곤 한다. 뢰브 감독 커뮤니티 SNS 캡처
요하임 뢰브 독일대표팀 감독.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지도력으로 큰 인기를 끌지만 가끔 돌발 행동으로 구설에 오르곤 한다. 뢰브 감독 커뮤니티 SNS 캡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 사령탑 요하임 뢰브(56) 독일 감독은 이번 예선 경기 도중 바지 속에 손을 넣은 뒤 그 손으로 냄새를 맡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혀 수많은 언론과 인터넷에서 놀림의 대상이 됐다. 한 기자는 기자회견에서 독일 대표팀 루카스 포돌스키(31ㆍ갈라타사라이)에게 감독의 그런 행동이 선수 사이에서 화제가 됐냐고 물었고 포돌스키는 “여기에 있는 나를 비롯한 80퍼센트의 남자들은 모두 바지 속에 손을 넣고 그곳을 만져 봤을 것이다. 그래서 선수들 사이에서는 큰 화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 기자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기자회견 최초로 박수까지 받았다. ㅋㅋㅋㅋ

어찌 보면 그렇다. 남자라면 그다지 이상한 행동은 아니다. 하지만 때와 장소가 중요한 것 같다.

뢰브 감독이 경기 도중 갑자기 사타구니에 손을 넣어 냄새를 맡는 모습. 뢰브 감독 커뮤니티 SNS 캡처
뢰브 감독이 경기 도중 갑자기 사타구니에 손을 넣어 냄새를 맡는 모습. 뢰브 감독 커뮤니티 SNS 캡처

뢰브 감독은 경기 도중 가끔 예상 밖의 행동을 하지만 선수들을 잘 챙기고 아버지 같이 다정하다. 독일 대표팀 마리오 괴체(24)는 소속 팀인 바이에른 뮌헨보다 대표팀에 들어가면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하고 실제 더 좋은 경기력을 보인다. 많은 독일 축구인들은 괴체가 뢰브 감독이 자신을 믿고 있다는 걸 알고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뢰브 감독은 그러나 한없이 자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분데스리가 볼프스브루크 소속의 막스 크루제(2ㆍ8볼프스부르크)는 독일 국가대표선수로서 사생활이 모범이 되지 못하고 유로를 준비 하는 자세가 안 돼 있다는 이유로 뢰브 감독에게 외면 받아 이번에 뽑히지 못했다. 독일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 모든 메이저 대회에서 최소한 4강에 독일을 진출 시킨 뢰브 감독. 선수 때는 아버지의 뒤에서 교체 선수로 벤치를 지켰지만 감독으로서는 세계 최고 지도자 중 한 명이 됐다. 좋은 선수가 꼭 좋은 감독은 아니라는 말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다. 나도 선수로는 아버지 근처도 못 갔지만 감독으로는 아버지보다 잘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하하하

그렇다면 스타 선수들의 마음과 어려움을 가장 잘 아는 감독들은 누구일까?

아무래도 선수 시절 큰 팀에서 스타로 활약을 했던 사람 아닐까.

이번 유로 2016의 우승후보 중 한 팀인 벨기에는 수많은 스타 선수를 모아 놓았다. 에당 아자르(25ㆍ첼시), 로멜로 루카쿠(23ㆍ에버턴), 케빈 데 브루잉(25ㆍ맨체스터 시티), 마루앙 펠라이니(29ㆍ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등. 유럽 톱 클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가득하다.

마르크 빌모츠 감독은 벨기에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빌모츠 감독 커뮤니티 SNS 캡처
마르크 빌모츠 감독은 벨기에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빌모츠 감독 커뮤니티 SNS 캡처

이 선수들을 하나로 만들어야 하는 임무를 가진 것은 1997년 샬케 04를 유로파리그 우승으로 이끌고 수년간 벨기에 대표팀에서 활약하면서 4회 월드컵 출전, 2002년 발롱드로 후보까지 이름을 올렸던 마르크 빌모츠(47) 감독이다.

나에게도 빌모츠 감독과 추억이 있다.

2002년 월드컵 직후 분데스리가에 진출해서 그 해 레알 마드리드 100주년 기념 세계 올스타에 내가 뽑힌 적이 있다. 샬케에서 뛰던 빌모츠도 함께했다. 나는 프로 경험이 전혀 없었고 세계 올스타는 TV로만 봐왔기에 갑자기 9만 관중 앞에서 그것도 지네딘 지단(44ㆍ프랑스), 루이스 피구(44ㆍ포르투갈), 카카(34ㆍ브라질), 에투(35ㆍ카메룬)와 같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경기를 뛰려니 온몸이 얼었다. 경기 전 레알 마드리드와 세계 올스타 선수들이 운동에 한 줄로 서있을 때 내 옆에 있던 사람이 바로 빌모츠였다.

정신이 하나도 없고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 앞이 깜깜한 나의 긴장한 모습을 본 빌모츠는 9만 관중이 레알 마드리드의 응원가 ‘할라 마드리드’를 부를 때 갑자기 나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차(Cha)! 아름답지 않아 이 광경? 그냥 즐겨!!”

그리고 윙크를 했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빌모츠와 대화했던 기억이다.

이처럼 빌모츠 감독은 선수들의 마음 그리고 대회 중 무엇이 선수들을 힘들게 하는지 본인이 경험해서 너무 잘 안다.

마르크 빌모츠(가운데) 벨기에 대표팀 감독이 라자 나잉골란(오른쪽)과 훈련하는 모습. 빌모츠 감독 커뮤니티 SNS 캡처
마르크 빌모츠(가운데) 벨기에 대표팀 감독이 라자 나잉골란(오른쪽)과 훈련하는 모습. 빌모츠 감독 커뮤니티 SNS 캡처

단적인 예가 있다.

이번 대회 스웨덴과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결승골 주인공인 벨기에 대표 라자 나잉골란(28ㆍAS로마)은 개성이 아주 강한 선수다. 머리 스타일부터 목까지 가득한 문신을 보고 같은 호텔에서 투숙하던 손님이 테러리스트인줄 알고 경찰에 신고를 해 출동했다는 해프닝도 있다. 재미있는 건 이 선수가 담배를 많이 피운다는 것이다. 빌모츠 감독도 알고 있다.

벨기에 국가대표 라자 나잉골란. 나잉골란 페이스북 캡처
벨기에 국가대표 라자 나잉골란. 나잉골란 페이스북 캡처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빌모츠 감독은 “나는 라자가 담배 피우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막고 싶지는 않다. 그가 하루에 5~6개비를 피워야 경기장 안에서 경기력이 나온다면 그렇게 하게 놔둘 것이다”고 했다.

우리나라 정서에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말이다. 그것도 모자라 빌모츠 감독은 이번 대회 호텔을 옮길 때 마다 나잉골란에게는 특별히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발코니가 있는 방을 준다고 한다.

선수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그들이 편안하게 대회 기간 중에 최고의 경기력을 보일 수 있는지를 잘 아는 빌모츠 감독이다.

감독마다 팀을 이끄는 방법이 다르다. 이번 지도자 교육 받을 때도 강사들은 항상 “정답은 없다”고 했다. 맞다!! 축구에는 정답이 없다. 경기를 이기고 마지막에 우승하는 감독이 잘하는 감독이고 능력 있는 감독이다. 그리고 그가 해왔던 방법이 적어도 그 대회에서는 정답이었던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크론베르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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