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진보 측 탄식 흘러넘쳐
이민 노동자ㆍ성소수자들
극우주의 부상에 우려 목소리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스코틀랜드ㆍ북아일랜드와 함께 잔류에 표를 던진 860만 런던시민들은 브렉시트가 현실이 된 뒤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리에서 만난 진보 성향 청년과 금융가들은 “브렉시트 결정은 큰 실수였다”고 입을 모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우리가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가”라는 탄식이 흘러 넘쳤다. 하지만 강경한 EU잔류 지지자들의 일부 시위를 제외하고 큰 소요는 없었다. 도리어 런던과 영국사회는 월요일 시장 반응에 숨을 죽인 폭풍전야 같았다.
브렉시트로 가장 혼란에 빠진 이들은 EU국가 출신 이민 노동자들이다. 폴란드 출신 레스토랑 직원 애나 워이딜라(41)는 AP통신에 “나 혼자라면 폴란드로 돌아갈 수 있지만 내 자식들은 영국인이나 마찬가지다. 서로 대화할 때도 영어를 쓴다”며 시민권을 따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격앙되기는 진보주의 성향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25일 열린 성소수자 행진 ‘프라이드 인 런던’에도 브렉시트로 인한 이민자 차별을 우려하는 이들이 나왔다. 이날 행진에는 ‘성소수자는 이민자를 환영한다’ ‘호모포비아와 인종주의를 그만둬라’ 등의 피켓이 나왔고 아예 12개의 금색 별이 달린 유럽기를 흔드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특히 극우와 보수 진영이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인해 부상할 것을 우려했다. 행진에 참여한 대학생 데미 테이철은 “공포가 아니라 진실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길 바랐다”며 “패러지(극우정당 영국독립당(UKIP) 대표) 같은 인물이 영국 정치를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리즈라고 이름을 밝힌 또 다른 대학생은 “EU가 영국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에 좋은 영향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라며 “보수당이 상처 입은 자본가들을 위해 노동권을 억압하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했다.
젊은 세대가 많이 이용하는 SNS도 불타올랐다. 이날 성소수자 행진에 잠시 참여한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를 향해 “웨일스와 중북부에서 표를 못 가져온 당신 잘못이다. 내 폴란드 친구가 울고 있다”고 비난하는 영상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영상을 찍은 노동당 활동가 탐 머치라인은 영국 PA통신에 “그가 여기 오는지조차 몰랐다. 성소수자 의제를 방패막이로 이용하려는 것 같아 화가 났다”고 밝혔다.
잉글랜드은행과 런던증권거래소가 있는 구도심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은 한 차례 폭풍 후의 고요를 맞이했다. 24일 노천주점과 인근 광장에 모여든 금융권 종사자들은 애써 표정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웨일스와 잉글랜드가 선전 중인 유럽 축구 국가대항전 ‘유로 2016’이나 27일부터 열리는 윔블던 테니스 대회 등을 화제로 올리며 위안을 찾았지만 걱정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바니 린든(41)은 “이제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이고 시장 반응은 다음주가 진짜”라며 “영국과 EU 두 시장이 함께 위기에 빠질 것”이라 분석했다.
금융가에서는 EU와의 협정을 잘 풀어나가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 시티 오브 런던과 신도심 커내리 워프(Canary Wharf)를 EU 진출 전진기지로 삼은 금융회사가 대거 유럽대륙으로 이탈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애덤 코커넬(48)은 “잔류 진영의 표현이 과장되긴 했지만 브렉시트로 인한 손해는 분명하다”며 “정부가 막대한 시장이익을 포기할 수 없다면 EU는 탈퇴해도 유럽 단일시장에는 남는 노르웨이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런던시는 질서있는 퇴각에 몰두했다. 사디크 칸 런던시장은 24일 런던 석간 스탠다드에 런던시민들을 향한 특별 기고문을 보내 “이제 시작된 일이니 지나치게 혼란에 빠지지 말 것”을 요청했다. 그는 “런던은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와 함께 영국과 EU의 재협상 테이블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며 “런던은 앞으로도 유럽인을 환영하고 세계로 열려 있는 지역으로 남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런던=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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