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에게 재판에 참석할 기회를 주지 않고 유죄를 선고한 하급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잇따라 취소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유죄가 확정됐다면 처음부터 다시 재판을 하라는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른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모(62)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소송촉진법상 피고인 스스로에게 책임이 없는 이유로 재판에 출석하지 못하거나 재심을 청구하지 못한 경우에는 1심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남씨는 이 같은 이유로 항소한 것이기 때문에 재심사유에 해당하는지를 먼저 판단해 처음부터 재판을 하라는 취지다.
남씨는 2007년 여름 피해자 손모씨에게 “내가 삼성맨 출신으로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을 생전에 집사로 모셨다. 공로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삼성그룹 비서실의 특별한 배려로 서울 서초구 삼성타운 내 50평을 특별분양 받았으니 여기서 스타벅스를 함께 경영하자”고 속여 6,290만원을 편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동부지법은 지난해 7월 남씨의 소재를 몰라 피고인 불출석 상태로 재판을 진행하고 징역 8월을 선고했다. 남씨가 재판 사실조차 몰라 항소하지 못한 상태에서 1심 판결이 확정됐다. 이후 형을 집행하기 위해 검거된 남씨는 공소장을 받지 못해 재판 사실을 몰랐다며 법원에 상소권 회복을 청구해 인정됐고 항소심 재판이 진행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일반 절차대로 항소 이유를 심리한 뒤 항소를 기각했지만, 대법원은 “피고인에게 1심 공판 절차에 참석하지 못한 책임이 없다면 피고인은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며 일반 절차가 아닌 재심 절차에 따라 재판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도 같은 날 부동산 사기로 2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 받은 유모(82)씨의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춘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사건 역시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징역 10월의 1심 판결이 선고됐고, 검찰의 항소로 진행된 항소심에서 1심이 그대로 확정됐다. 이후 검거된 유씨가 법원에 상소권 회복을 청구했고,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상고심이 진행됐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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