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떠넘기는 사회’ 기획
하청을 죄악시… 또 다른 문제 소지
사회적 반향 큰 사건 꾸준히 감시를
‘대통령 해외 순방의 품격’ 칼럼
정부 외교ㆍ언론 시선 균형적 비판
창간특집 ‘대선 여론조사’ 상투적
한국일보 보도와 독자권익 침해 여부를 점검하고 편집 방향을 조언하는 독자권익위원회 6월 회의가 15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 18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인 강남준 위원장을 비롯해 독자위원인 윤양미 산처럼출판사 대표, 정한울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 배수정 CJ오쇼핑 팀장, 허윤 법무법인 예율 대표변호사, 진성록 연세대 사회학과 대학원생과 간사 이계성 한국일보 논설실장이 참석했다.
강남준
6월 독자권익위원회 회의를 시작하겠다. 오늘은 지난 한 달간 주요 이슈였던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국회 원 구성, 대통령 순방외교, 조선해운 구조조정, 창간 특집 등에 대해 우선 논의하기로 하자. 그 외 사안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얘기해주기 바란다.
진성록 위원:
사건 직후인 5월 30일 자에서 사실을 신속히 보도하는 것은 물론 구의역 사고의 타임라인을 상세히 보여줘 일목요연하게 잘 전달됐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6월 13일 자 1면 ‘또 나 홀로 작업하다 방사선 피폭… 구의역 사고 판박이’ 라는 기사였다. 2면에서도 “갓 입사 20대 사원을 방사선 안전교육도 없이 현장 투입했다”고 구의역 사고 이후에도 여전히 업무에 미숙한 젊은 사원들이 위험한 업무에 내몰리고 있음을 고발해 주의를 환기했다. 이어 14일 자 12면 ‘광고에 막힌 스크린도어 비상문’기사를 통해 구의역 사고 이후에도 한국일보가 이 문제를 잊지 않고 주시하고 있음을 보여줬고, 결국 서울시가 광고 철거를 서두르게 하였다. 두 사건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다룸으로써, 구의역 사고가 단순한 우연이 아닌, 구조적 차원의 문제임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배수정
한국일보가 주요 사건 사고에 발 빠르게 대응했지만, 관련 이슈를 주도하지는 못했다. 구의역 사고의 경우 사고 첫 보도 다음 날인 6월 1일부터 기획 ‘위험 떠넘기는 사회’를 시작했는데 이 경우는 너무 서둘러 독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들까지 조명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사고 발생 직후부터 모든 언론이 ‘저가 하청’을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런데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저가 하청이 아니라 서울메트로를 둘러싼 관피아와 전관예우가 근본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획을 서두르느라 하청 자체를 죄악시하는 우를 범했다. 기업 입장에서 볼 때 위험한 업무일수록 그 업무에 정통한 전문업체에 적절한 비용을 지급하고 외주를 주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구의역 사고를 계기로 개선돼야 할 것은 관피아들의 특혜를 위해 하청업체들에게 정당한 대가가 돌아가지 않는 구조다. 하지만 한국일보를 비롯한 언론이 하청 자체를 문제시하자, 서울시도 스크린도어 보수업무를 본사가 맡는 대책을 내놓았는데 이는 또 다른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다.
윤양미
구의역 사고를 위험의 외주화로 보는 한국일보 기획의 시각은 일정 부분 정확한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초점을 확장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김군이 3년 사이에 3번째 죽음이라는 점에 주목해 ‘안전 볼모 잡힌 제2의 김군들’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다뤘는데, 서울메트로의 외주업체에 국한한 ‘김군들’뿐이었다. 다른 분야의 외주화와 이에 따른 비정규직 저임금 청년에도 시선을 확대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정한울
위험의 외주화라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지적이 많았는데 그런 제도를 바꾸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반면 스크린도어 사고는 3년 사이 3번 반복됐는데, 더 이상 재발하지 않게 하기 위한 단기적, 기술적 대책은 없는지에 대해서도 언론이 지적해 줄 필요가 있다.
허윤
구의역 사고는 전형적인 인재다. 과거 한국일보를 찾아봤다더니 2015년 8월 30일자 한국일보 기사 제목이 ‘강남역 스크린 도어 사망 사고 2인 1조, 안전 매뉴얼, 예산 등 단 하나 지켜지지 않았다’였다. 장소만 바꾸면 이번과 똑같다. 2013년 성수역 사건도 동일하게 지적됐다. 이런 사건이 반복되는데도 막을 수 없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언론이 문제점을 지적한 후에 잘 지켜졌는지를 추적했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언론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뉴스가 중요하지만 제기된 문제가 고쳐지고 있는지 끈기 있게 추적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6월 3일 자 ‘36.5도’ 코너 ‘눈에는 눈, 돈에는 돈’ 칼럼에서 노동자 사망에 대해 기업에 징벌적 보상금을 추징하자는 주장은 언론이 현실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구체적 대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강남준
징벌적 손해배상의 필요성을 잘 지적한 칼럼이다. 이를 본격적으로 이슈화해도 좋을 것 같다.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이 제도화돼 있다. 신문을 비롯한 언론이 문제 제기는 잘하지만, 해결책 제시는 소홀한 부분이 있다. 가령 구의역 사고를 계기로 희망이 없는 20대로 연결해 기획기사로 짚어주는 건 어떨지. 또 사회 반향이 컸던 사건 사고의 경우 ‘추적 조직’ 만들어서라도 이후 얼마나 달라졌는지 여부를 꾸준히 감시 점검해야 한다.
배수정
대통령 해외 순방 보도를 읽다 보니 마치 개인적 해외 나들이, 추억여행으로 비쳤다. 온통 대통령의 의상에 집중하는 보도는 독자에게 ‘대통령이 놀러 갔구나’하는 인상이 들게 한다. 이런 보도 태도의 이면에는 일종의 여성혐오가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진성록
6월 10일 자 ‘36.5도’에 최문선 기자가 쓴 ‘대통령 해외 순방의 품격’ 칼럼이 그런 문제를 잘 지적했다. 현 정부의 외교 행보와 이를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을 균형 있게 비판하면서 잘 짚었다. 솔직히 국내보도를 보면 대통령이 해외에서 뭘 하고 있는지, 외교에서 뭐 하는지 알 수 없다.
정한울
순방 다녀온 이후 지지율 변화 기사가 없어서 좋았다. 대통령 해외 순방이 지지율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이며, 대통령 지지기반의 변화를 주는 사건이 아니다. 관행적으로 상투적으로 순방 직후 지지율 변화를 보도하는 것은 자제돼야 한다.
윤양미
정상외교처럼 일반인의 관심과 거리가 있고 복잡 미묘한 의제는 전문가들의 해설이 필요한데 6월 2일 자 ‘아침을 열며’ 코너에 ‘아프리카 간 박 대통령, 북경 간 리수용’이란 칼럼과 최문선 기자의 칼럼 이외에는 궁금증을 풀어 줄 해설이 없어 아쉬웠다. 이번 순방 외교의 의미를 같은 시기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 오바마의 외교나 미일, 북미, 북중 움직임 등과 묶어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전문가의 칼럼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했다. 6월 8일 자 ‘묻지도 않는 데도 대통령 건강 세세히 공개하는 청’이라는 기사는 “대통령이 몸을 아끼지 않고 세일즈 외교를 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는 청와대의 문제점을 잘 짚어준 것이다.
이계성
대통령 순방 외교 보도는 메인 해설, 스케치 등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주요국과의 정상외교는 핵, 중요한 경제기사 등이 메인 기사로 다뤄진다. 하지만 아프리카 등 우리에게 생소한 국가를 방문하면 스케치 기사 비중이 늘어난다. 최문선 기자가 칼럼에서 한반도 주변 외교가 긴박하게 돌아가는데 한가하게 아프리카에 갔냐는 일부 언론 지적을 비판했는데 공감한다. 대통령은 취임 직후 5년 순방 외교 일정을 짠다. 상당히 오래전에 순방일정이 잡힌다는 얘기다. 그런데 무슨 일 있다고 갑자기 방문 일정을 취소하는 것은 해당 국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정한울
6월 8일 자 4면에‘국회 원 구성 자동화해야 ‘유령 국회’ 막는다’는 박스가 있는데 이런 지적은 22년째 반복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비교, 전문가 제언을 통해서 근본적으로 바꿀 방안을 제시한 것은 좋은 시도였다. 다만 영국과 미국의 의회와 달라 적용 여부가 의심스럽다. 한국 상황에 가까운 대안까지 제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남준
창간 특집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6월 9일 창간호 1면 차기 대선 여론조사 기사다. 수십년 된 신문의 관행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1965년 한 학생 잡지가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란 제목으로 그린 만화가 최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적어도 창간호라면 창간 62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60년 후 어떤 변화가 있을지 같은 호흡이 길고 진지한 기획이 필요했다.
진성록
창간 기획의 하나인 ‘산업개혁 : 미래를 열다, 동행을 꿈꾸다’의 취재 내용도 이미 이슈가 되었던 사례들이다. 몇 년 전에 작성된 기사라고 해도 구분하기 힘든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현실 및 사례와 비교했으면 조금 더 입체적이고 임팩트가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기사들과 시각이 충돌하기도 한다. 6월 10일 1면에는 “카카오 하림 등 ‘대기업 집단’ 족쇄 벗는다”며 대기업 규제 완화를 환영하는 듯한 기사가 실렸는데, 4면에는 산업생태계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기획이 실렸다.
윤양미
창간호 1면에 62주년을 맞이한 한국일보의 다짐이 담긴 칼럼을 싣거나 따로 언제 창간되어, 어떤 시대 인식을 하고 신문을 만들고 있는지 밝히는 글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여러 창간특집이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창간을 알리는 로고도 작아서 다른 사와 변별이 되지 않았다. 창간 특집만 따로 모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허윤
변협이 100여 일 동안 3,000회 이상 구치소의 의뢰인은 접견한 이른바 ‘집사 변호사’를 징계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모든 언론사가 다 집사 변호사는 부도덕한 변호사라는 보도에 머물렀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이들 변호사를 집사 역할을 하도록 내몬 그 법무법인의 횡포다. 징계받은 6명의 변호사는 모두 신임 변호사들이다. 법조계에 만연된 ‘갑질’ 이고, 힘없는 을만 징계 받은 사건인데 이를 조명한 보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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