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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규범과 현실의 괴리에 관하여

입력
2016.06.2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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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만큼 역동적인 사회가 있을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역동성은 꽤 긍정적인 효과가 있어서 다른 나라 같으면 쉽게 일어나기 어려운 혁신적 패러다임의 변화와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고,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는데도 상당 부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나 경제의 영역에서의 이러한 역동성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입법과 사법의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입법부로서 국회의 역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비판적인 목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국회는 적어도 사회적으로 큰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슈에 대해서는 비교적 빠른 대응을 하는 편이고 그 결과로 우리는 분야별로 많은 특별법을 가지게 되었다.

사법제도개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어서, 사법시험의 폐지 및 법학전문대학원의 설립과 같이 다른 나라에서는 몇 세기에 걸쳐서 이루어졌거나 아니면 아예 가능하지 않았을 사법제도의 개선이 우리나라에서는 생각보다 짧은 기간 내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문제는 입법 및 사법의 영역에서 그와 같은 역동적인 변화의 결과 생길 수 있는 규범과 현실의 괴리이다.

법률의 해석과 집행은 그 공동체에서 공유되는 규범적 가치를 반영하면서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쳐서 정립된 법이론의 체계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어느 특별법에서 갑자기 새로운 법질서에 대해 정하거나 특정 행위에 대해 강력한 처벌규정을 마련한다고 해서 그 사회의 규범적 질서가 바로 그 특별법의 내용대로 형성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특별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 사이에서의 불균형, 법 적용의 모순과 비일관성 등의 문제로 인해 상당 기간은 혼란스러움과 비효율이라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지나치게 높은 윤리적 혹은 도덕적 기준들이 바로 특별법의 형태로 법률적 의무로서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부과되는 것도 문제이다.

물론 공동체를 이루어서 살아가는 각각의 구성원들로서는 최선의 도덕적·윤리적 기준을 충족시키면서 사는 것이 바람직하고 또 권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도덕적·윤리적 기준의 위반이 바로 법률적 의무위반으로 귀결되는 것은 곤란하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태생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것이어서, 높은 도덕적·윤리적 기준이 바로 법률적 의무위반의 기준이 되면, 그 공동체 구성원 대부분이 잠재적 피의자가 될 것이고, 이 경우 정보와 권력을 가진 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방을 너무나 쉽게 무력화하거나 혼내줄 수 있는 합법적 수단을 갖게 된다.

또한, 어떤 현상과 대상을 보는 가치의 규범적 기준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어서 특정한 시점에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정치적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법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거나 달라진 정치적 환경 속에서 급격하게 대중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20대 국회가 출범하면서 정치권에서는 개헌 논의를 포함해서 다시 수많은 새로운 입법과 특별법에 관한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 그중에는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풀기 위해 꼭 필요한 입법들도 있지만, 시류에 편승해서 정치적 이익을 누리려는 정치세력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거나, 추상적인 규범적 가치를 방패 삼아 특정한 이익집단들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입법들도 보인다.

모든 가치 있는 것의 획득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르기 마련이고,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규범은 그 공동체 구성원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로 이용되게 될 것이다. 선한 마음만으로는 결코 훌륭한 정치적 결과를 얻어낼 수 없다. 엄격한 법률을 만들어 놓기만 하면 세상이 깨끗해질 것이라는 믿음만큼 바보스러운 것도 없다. 세상은 얼마든지 그 선한 마음과 바보스러운 믿음을 왜곡하고 자신의 뜻대로 이용하게 될 것이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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