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카페’ ‘쩜오’ ‘화장실’ ‘무고죄’ ‘조직폭력배 개입’…
지난 10일 유흥업소 직원 A씨가 가수 겸 배우 박유천(30)을 성폭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는 사실이 보도된 후 관련 기사들의 제목에 등장한 단어들이다. 사건에 대한 경찰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선정적인 보도가 난무했다. “유흥업소 여자가 강간을 당한다는 게 말이 되냐”, “꽃뱀에게 잘못 걸렸다”등 피해자인 고소인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반응들도 많았다. 박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네 번째 여성까지 등장하면서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이번에는 “연예기사 말고 중요한 사건을 보도하라”며 “박유천 사건이 묻어버린 O가지”라는 게시글들이 인터넷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시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이번 사건이 ‘연예인 스캔들’로 비춰지면서 유흥업소 여성 접객원에 대한 성범죄 문제를 덮어버린다는 것이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의 정미례 공동대표는 23일 인터뷰에서 “이 사건을 선정적인 가십거리로 보기 전에 유흥업소들이 어떻게 변천되고 운영돼 왔는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강남 유흥업소의 성매매는 오랜 문제로, 그간 많은 단속과 적발이 있었다. 현재 강남쪽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상시 고용형태가 아니다. 이들은 보도방이라는 무허가 직업소개소를 통해 시간제로 각 업소에서 일한다. 유흥업소 업주들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들이 여성 접객원을 상시적으로 고용하는 부담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또한 사건이 발생한 유흥업소를 ‘쩜오’,‘텐카페’등으로 부르며 보도하는 문제를 지적하며 “이런 명칭은 업소들의 영업 전략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조직폭력배의 사건 개입도 드러났다. 정 대표는 “실제로 강남뿐만 아니라 많은 유흥업소는 조직폭력원이 운영에 관여하며 이들 상당수가 일반인 투자자를 끼고 업소를 운영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조직범죄단체의 불법적 지하경제 운영실태와 정책대안 연구’에 따르면 심층면접에 참여한 조직폭력원 307명중 74.9%가 유흥업소를 직접 운영했다고 답했으며 ‘영업 보호’의 방식으로 유흥업에 관여하는 비중도 45%나 됐다. (자료보기)
‘유흥업소는 원래 그런데 아니냐’고?
강남에 밀집한 연예기획사도 이런 유흥업소의 주요 고객층 중 하나다. 정 대표는 “유흥업소는 접대 상납 비리 유착 등 수많은 비즈니스 관행들이 벌어지는 곳”이라고 말했다. “유흥업소에 다니는 이들은 자신들이 지불한 비용에 접객원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권리가 포함돼 있다고 생각한다. 업소에서도 영업 전략과 관행으로 묵인한다. 접객원이 일하는 공간에서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고용주가 해결해야 하지만, 이들을 직접 고용하는 것도 아니라며 업소측도 나 몰라라 한다. 여기에‘유흥업소에서 그런 일이 있어도 감수해야 하지 않느냐’는 사회적 인식까지 더해져 접객원들은 도움을 호소할 곳이 없다.”
대검찰청이 지난해 공개한 2014년 범죄분석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4년에 발생한 2만 9,863건의 성폭력 범죄 중 7.2%가 유흥접객업소에서 발생했다. (자료보기) ‘유흥업소에서 무슨 성폭력 범죄냐’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실제로 성희롱과 성추행, 성폭행 범죄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 성범죄는 범죄의 피해자, 또는 기타 법률이 정한 자의 고소·고발이 있어야 공소할 수 있는 범죄였으나 2013년 6월부터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가 폐지돼 고소인의 고소여부와 상관없이 경찰 수사가 진행된다. 이번 사건에서 첫번째 고소인이 고소를 취하했음에도 경찰 수사가 계속 이뤄지는 이유다.
‘대가 받았다’ 밝힌 순간 성폭력은 성매매로
성관계의 대가를 받았다면 성폭력 사건이 성매매 사건으로 바뀌는 것이 부지기수다. 정 대표는 “성범죄 친고죄가 폐지되기 전 단체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티켓다방 종사 여성의 사건을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었다. 가해자 남성까지 지정해서 신고를 했지만 피해 여성이 3만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경찰은 사건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성범죄 친고죄는 폐지됐지만 ‘대가를 받은 성관계’는 자발적 성매매로 여겨지는 사회적 인식은 큰 변화가 없다. 최근에는 7세 지능을 가진 13세 지적장애 아동을 성매수한 남성에게 법원이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려 논란이 되고 있다. 재판부는 이 아동이 남성들로부터 숙박을 제공받았기 때문에 성폭행을 당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 성매매를 한 것으로 보고 손해배상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 대표는 “(여성가족부 산하 성폭력ㆍ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센터인)해바라기 센터에서도 처음에 성폭력으로 접수된 사건이 대가를 받았다고 하면 성매매 사건으로 바뀐다”며 “13세 지적장애 아동조차 자발적 성매매를 했다고 하는 사회에서 유흥업소에서 성인 여성이 당한 성폭력에 대해선 편견이 작용한다”고 말했다.
현재 이번 사건과 관련 경찰은 지난 21일 고소인 4명에 대한 1차 조사를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원래 경찰은 이번 주말에 박씨를 소환 조사할 예정이었으나 박씨 측이 첫 번째 고소인 등을 무고와 공갈 혐의로 고소함에 따라 이에 대한 조사도 함께 진행되며 박씨의 주말 소환 여부도 미지수가 됐다.
정 대표는 “이 사건은 네 명의 피해자가 나온 연쇄 성범죄 의혹 사건이다. 박씨의 기획사 측에서 무고죄로 고소했는데 이는 모든 조사 후 무혐의로 나왔을 때 해도 되는 나중 문제다. 그런데 피고소인 박씨를 소환 조사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 건 증거 인멸 시간만 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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