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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 그림 속 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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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 그림 속 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입력
2016.06.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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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가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는 치밀하고도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르네 마그리트의 사랑이야기를 직조했다. 문학동네 제공
프랑스 소설가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는 치밀하고도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르네 마그리트의 사랑이야기를 직조했다. 문학동네 제공

빛의 집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성귀수 옮김

문학동네 발행·224쪽·1만3,500원

상상력이란 기상천외한 생각을 떠올리는 능력이 아니다. 그 기상천외한 생각을 있을 법하게 그려내는 능력이다. 죽은 이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고, 외계생명체와 의사소통을 하며, 과거로 돌아가 역사적 한 순간의 흐름을 바꿔놓는다. 진지한 개연성을 중시하는 독자들에겐 영 취향에 맞지 않는 서사들이지만, 어떤 작가들은 세부의 진실성을 통해 이 황당한 이야기를 끝내 납득시킨다.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56)의 ‘빛의 집’은 그래서 작가의 이와 같은 능력을 심사하기 위한 삐딱한 독서이기 쉽다. 리암 니슨 주연의 영화 ‘언노운’의 원작자이자 공쿠르상과 마르셀 파뇰상 등을 수상한 코뵐라르트는 대중성과 문학성을 겸비한 프랑스 작가다.

소설은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환상 모험담이다. 전도유망하던 아역배우였던 주인공 제레미 렉스는 너무 일찍 들이닥친 변성기로 나무십자가소년합창단원의 배역을 놓친 이후 연예계의 변방으로 밀려난 25세 청년. 이렇다 할 재능도 기술도 없던 그는 아름다운 연상의 소녀 곁에 머물고자 소년 시절 접했던 첼로를 본격적으로 배워보고 싶지만, 가업을 물려주고 싶어하는 제빵사 아버지의 강권에 못 이겨 빵집에서 일한다. 사건은 TV퀴즈프로그램 우승 후 받은 여행권으로 이제는 일생일대의 연인이 된 ‘첼로소녀’ 캉디스와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나려던 그가 연인과 크게 다투고 홀로 이별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진다. 베네치아의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캉디스가 가장 좋아하던 그림 ‘빛의 제국’을 보다가 주황빛 창문을 열고 어서 들어오라는 묘령의 여인을 만나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 것. 그 여인은 마그리트의 알려지지 않은 연인 마르타이며, 빛의 제국은 그녀의 집이었다.

임사체험, 유체이탈 등의 공상과학적 모험담을 우스꽝스럽게 보여주는 소설은 마그리트와 마르타의 사랑 이야기를 나치의 유대인 박해라는 급류 속에서 담담하면서도 애절하게 그린다. 아내 몰래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던 마그리트는 마르타의 그림을 그렸고, 유대인이었던 마르타는 아우슈비츠로 끌려갔으며, 로헨브라우라는 나치는 마그리트의 그림들을 볼리비아로 빼돌렸다. 소설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각각의 사건들을 시간순, 공간순으로 재배치하며 ‘빛의 제국’의 비밀을 직조해낸다.

마그리트와 마르타의 역사적으로 허구적인 사랑과 제레미와 캉디스의 허구적으로 실제적인 사랑이 병치되며 모험의 동력을 만들어내는 이 소설에서 작가는 ‘예술의 보고(寶庫)로서의 예술’을 보여준다. 피렌체의 미술관에서 황홀경으로 쓰러졌던 스탕달을 시조로 하는 스탕달신드롬은 예술작품 앞에서의 신비체험이라는 그 정의에 걸맞게 제레미를 초현실주의적인 세계의 저편으로 이끌었고, 그 면면한 전통 속에서 제레미는 허구적 역사 속으로 대담하고도 뻔뻔하게 돌진한다.

“마그리트가 옳았다. ‘환상은 우리가 믿는 곳에 있는 게 아니다.’ 산산조각난 존재, 덧없기 짝이 없는 운명에게 비상탈출구를 열어주고 또 다른 세계를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들의 역할이 아닌가.” 작가는 “나는 상상의 자유를 사랑한다. 하지만 동시에, 작고 구체적인 디테일들까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도록 쓰고 싶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작가 자신 ‘빛의 제국’ 앞에서 경험한 스탕달신드롬을 바탕으로 쓴 이 팩션은 다분히 영화적이고 치밀하다. 이야기의 아귀를 맞추는 힘이 뛰어난 소설이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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