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억 사업에 24개 지자체 응모
연고 있는 유명 작가들까지 동참
“어느 누구도 승복하지 않았을 것”
재공모 없이 선정할 가능성 높아
법에 규정된 사업 백지화는 안돼
문학계 의외로 “정부 결정 환영”
“처음엔 절차적 투명성만 생각해 공모 절차를 진행했으나 각 지역의 지나친 과열 경쟁 때문에 이대로 진행해서는 도저히 안되겠다고 판단했다. 사려 깊지 못하고 성급했던 공모 절차 진행에 대해서는 공모한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주민들과 문인들께 다시 한번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올린다.”
정관주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은 2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450억원 규모의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잠정 중단 결정을 발표하면서 사과의 뜻으로 깊이 머리를 조아렸다. 영남권 신공항 사업 백지화에 이어 또 다시 ‘지역갈등’을 이유로 국책사업이 주저앉은 셈이다.
국립문학관 건립사업은 지난해 제정된 문학진흥법에 규정된 사항이다. 이 때문에 이번 중단 결정은 문학관 건립계획 백지화라기보다 공모 절차 중단이다. 정 차관은 올 하반기 ‘한국문학 진흥 중장기 종합대책’을 공개할 방침인데 여기에 새로운 국립문학관 건립계획을 포함시키겠다 밝혔다. 정 차관은 “새로운 계획에 대해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고 했지만, 후보 지자체들 간 과잉경쟁으로 인해 공모절차가 중단된 만큼 다시 공모절차를 밟기보다 정부가 자체적으로 심의,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문체부 관계자는 “공신력이 생명인 정부기관이 진행되던 공모절차를 중도에 중단한 것은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에도 수익성 있는 사업을 서로 유치하려는 핌피(PIMFYㆍplease in my frontyard)현상이 도를 넘어섰다는 판단이다. 사업비 450억원 규모가 국책사업치곤 소규모인 데다, 유명 작가들의 이름값, 각 고장들의 자존심, 막 개원한 20대 국회의 입김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정 차관은 “문학은 특히나 통합과 화합을 이뤄내야 하는 것인데 지자체 간 배수의 진을 친 자존심 경쟁으로 변질된 데다 해당 지역과 연고가 있는 문인들까지 유치운동에 참여하면서 문학계의 분열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어떤 결과를 내놔도 어느 누구도 승복하지 않을 게 뻔해서 오히려 공모를 진행하는 게 더 무책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문학계는 의외로 적극적인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곽효환 한국시인협회 부회장은 “문학관의 핵심 주체인 작가와 독자의 의견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결정했다면 아무도 동의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꼭 신축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기존 시설의 재활용 등 다양한 접근법을 구상하면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작가회의, 한국문인협회 등 5개 문학단체는 ‘한국문학진흥 및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공동준비위원회’를 구성해둔 상태다. 준비위에 참가 중인 강형철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은 “다음달 14일 공개포럼을 열어 독자와 문인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문체부측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국립한국문학관은 문학유산과 원본자료의 체계적 수집·복원, 보존·아카이브, 연구·전시, 교육기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문체부는 당초 올해 문학관 건립부지를 선정한 뒤 내년에 착공, 2020년 하반기에 개관할 예정이었다. 지난달 공모결과 16개 시도에서 24개의 지자체가 응모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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