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신이 아닌 게 틀림없었다. 도무지 나답지 않은 일을 계속 저질러대고 있었으니. 소매치기를 만나 지갑을 털렸다는 말에 덥석 돈을 건네질 않나, 생전 처음 보는 이에게 나 먹기에도 부족한 밥의 절반을 덜어주질 않나, 웬 남자의 썩어가는 것 같은 발을 무릎에 올려놓고 물집을 따주질 않나. 낯가림이 심해 까칠하다는 말을 달고 살던 나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자신도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탓이 아니라 길 탓이었다. 스페인의 성지순례길 카미노데산티아고가 지닌 영적인 힘 때문이었다. 천년의 세월에 걸쳐 수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걸어온 길답게 치유의 힘을 지닌 길이었다. 그 길에서는 가난한 이나 부유한 이나 공평하게 환대받았다. 순례자 전용 숙소인 공립 알베르게는 저렴한 비용에 침대를 제공했고, 먼저 그 길을 걸었던 이들은 자원봉사자 호스피탈레로가 되어 순례자들을 도왔다. 길에는 트럭을 끌고 다니며 음료나 간식을 제공하는 이가 있었고, 순례자 전용 여권을 내밀면 무료로 진료를 해주는 병원도 있었다. 지난밤 성당에서 내 더러운 발을 씻어주던 신부님이 남긴 감동이 식기도 전에 백 년째 포도주를 무료로 제공하는 수도원과 마주쳤다. 전설과 신화가 살아있고, 관심과 환대가 넘치는 그 길에서 나는 착해지고 용감해지고 어여뻐졌다.
3년 후, 내 돈 써가며 사서 고생을 또 했다. 이번에는 이웃 나라 시코쿠(四國) 섬의 불교 성지 순례길이었다. ‘헨로 미치’는 1,200년 역사에 길의 길이도 1,200㎞. 영험하기가 산티아고 못지않았다. ‘영빨’이 떨어지려 하면 어디선가 누군가가 나타나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것도 고개를 깍듯이 숙이면서. 빵과 음료수와 돈과 잠자리까지 품목은 다양했다. 장을 보고 돌아가던 길의 할머니가 지갑을 열어 꼬깃꼬깃한 천엔짜리 지폐를 건네기도 했고, 권상우의 팬이라는 아주머니는 집에서 재워주고 도시락을 싸서 건넸다. 지난 밀레니엄의 세월 내내 이 섬의 주민들은 순례자에게 공양물 오세타이를 제공해왔다. 순례자들에게 할인을 해주는 숙소나 식당도 제법 있었다. 산티아고도, 헨로 미치도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전통이 길 자체보다 매력적이었다.
그 길에 대한 그리움을 어쩌지 못해 다시 산티아고로 가는 항공권을 끊던 날, 정부가 한반도 해안선과 비무장 지대 주변을 잇는 4,500㎞의 코리아 둘레길을 만든다고 발표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국제적인 도보여행 명소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들으면서도 나는 왜 설레지 않았을까. ‘연간 550만 외국인 방문, 7,200억원의 경제효과’같이 김칫국부터 마시는 설레발 때문이었을까. “문제는 길이 아니라 길에 깃든 정신이라고요, 길의 하드웨어가 아니라 콘텐츠에 집중해주세요”라고 항변이라도 하고 싶었다.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이 사랑받는 이유는 효율성이나 경제효과 같은 것을 먼저 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원래 있던 길을 활용하거나 잊힌 옛길을 사람의 발자국만으로 살려내는 식으로 자연스럽고 정겨운 길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산에 깃든 마을을 둘러 길을 이은 지리산 둘레길도, 산티아고에서 영감을 받아 제주의 골목과 마을을 직접 걸어 땀으로 엮은 올레길도 관의 주도로 만들어진 길이 아니다. 그곳에 살던 이들이 자발적으로 뛰어들어 천천히 일구어낸 길이다. 가까이 있는 길이 좋은 길이고, 오래된 길이 아름다운 길임을 그 길들은 증명해냈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우리 산하에는 이미 1만8,000㎞의 도보 여행길이 만들어져 있다. 관에서 할 일은 안전하고 저렴한 공용 숙소를 제공하고, 지저분한 간판과 현수막을 규제하고, 데크나 전망대 같은 인공시설물의 과도한 설치를 조절하고, 길을 걷는 이들의 에티켓을 홍보하는 쪽 정도가 아닐까. 걱정과 바람이 이리도 많다니, 나도 늙어가는 게 틀림없다.
김남희 여행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