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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지구에 홀로 남은 양철곰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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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지구에 홀로 남은 양철곰 로봇

입력
2016.06.24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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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자연을 파괴하던 인간들은 결국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하고, 미처 따라가지 못한 가난한 소년과 양철곰 로봇만이 지구에 남는다. 리젬 제공
끝없이 자연을 파괴하던 인간들은 결국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하고, 미처 따라가지 못한 가난한 소년과 양철곰 로봇만이 지구에 남는다. 리젬 제공

양철곰

이기훈 그림

리젬출판사ㆍ50쪽ㆍ1만2,000원

여름 휴가철이 다가온다. 도시인들은 시원한 피서지나 해외여행을 꿈꾼다. 뜨겁게 달궈진 도시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열대야를 지새울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도시를 떠날 수 없다. 먹고 살 일자리가 도시에 있으니 별 수 없지 않은가! 푸르른 자연이 있고 공기가 맑은 시골은 매미소리가 적막하다.

그림책 표지치곤 다소 어둡고 음울하다. 낡은 양철로 얼기설기 붙여 만든 거대한 곰이 허름한 집들 사이에 걸터앉아 있다. 곰은 무슨 생각에 잠긴 듯하다.

책장을 펼치면 숨 막히는 도시의 풍경이 화면 가득 펼쳐진다. 건물들은 돋보기로 봐야 할 정도로 세밀한 펜 선과 수채화로 그려졌다. 작가가 그림 한 장, 한 장의 밀도를 위해서 들였을 공이 짐작이 간다. 형식상으로는 그림책이라기보다 큰 만화책이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글도 없다. 하지만, 무심히 그림을 따라 책장을 넘기다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폐허가 된 미래의 도시는 마치 과거 1960년대 한국의 후락한 집들을 연상시킨다. 인간들은 끝없이 자연을 파괴하다 결국에는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한다. 가난한 한 소년은 행성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지 못한다. 마지막 남은 기차는 단 한 대, 그 기차를 움직일 수 있는 로봇이라고는 거대한 양철곰뿐이다. 그러나 왜인지 양철곰은 매일 자신의 몸에 물을 끼얹어 스스로를 부식시킨다. 새들이 자신의 몸에 물어다 놓은 도토리들을 싹 틔우기 위해서다. 소년은 양철곰을 찾아가 함께 새로운 행성으로 떠나자고 간절히 호소한다. 묵묵히 물 붓기를 이어가던 양철곰의 몸은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린다. 곧 도시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소년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부서져 버린 양철곰의 몸에서 초록의 새싹들이 솟아난다.

자연을 파괴한 인간들은 결국 무엇을 누리고 살아가게 될까? 양철곰은 인간이 만든 로봇에 불과하지만 자연의 섭리를 따르려고 한다. 어느 누구도 지구의 영원한 주인이 될 수는 없다. 땅 위의 모든 새로운 생명들은 이전 세대의 희생과 죽음 위에서 태어난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 많은 열매를 맺듯, 죽음이 곧 새로운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철학적인 그림책이다. 소윤경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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