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ㆍ납품 계약 관련 금품수수 등
줄줄이 무죄 판결 체면 구겨
부실 수사 등 도마에 올라
정옥근 前 해군총장엔 법적용 잘못
승진ㆍ납품계약 유지 청탁과 함께 1억원대 뒷돈을 받는 등 5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민영진(58) 전 KT&G 사장에 대해 법원이 모조리 무죄를 선고했다. 실제 청탁 여부 등 입증이 부족했다는 1심 판단은 곧 검찰의 부실수사를 지적하고 있다. 대법원은 방산업체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정옥근(64) 전 해군참모총장에 대해서도 검찰의 적용 죄명을 문제 삼아 무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했다. KT&G 비리와 방산 비리에 칼을 댄 검찰이 크게 체면을 구긴 꼴이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현용선)는 23일 민 전 사장의 배임수재 4건, 뇌물공여 1건 등 5개 혐의 중 어느 하나도 유죄로 인정하지 않고 검찰의 공소사실을 산산조각냈다. 법원은 민 전 사장의 수의를 벗겨주는 이유로 ▦금품을 줬다는 이들의 진술이 주된 증거인데 믿을 수 없고 ▦일부 금품공여 동기나 금융자료, 뇌물을 주도록 승인한 보고서의 입수 경로 등이 조사ㆍ제출되지 않은 점 등을 들었다. 그러면서 각 혐의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거나 ‘단정할 수 없다’는 지적이 10여차례 판결문에 되풀이됐다.
먼저, 재판부는 민 전 사장이 납품계약 유지를 바라는 협력업체 두 곳에서 사장 취임 축하와 딸 결혼 축의금조로 2010년 2~3월, 2012년 3월 각각 3,000만원씩을 받은 혐의에 대해 돈을 준 이와 전달한 부하직원 최모씨 등의 진술이 오락가락한다는 취지로 죄를 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최씨에 대해선 “자신이 수사를 받을 상황에서 허위 진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민 전 사장이 그 금액이 필요한 사정과 뒷돈이 조성된 사정을 알만한 금융자료 등도 조사되지 않아 유죄 인정이 어렵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2010년 청주 연초제초장 부지 매각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 6억 6,020만원을 먹이도록 용인한 혐의에 대해선 민 전 사장이 “어쩔 수 없군요”라며 공무원 요구대로 뇌물을 주라고 승인하는 보고서의 입수 경위를 알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무죄가 됐다. 매각과정에 관여한 최씨도 보고서를 누가 왜 썼는지 기억을 못했다.
재판부는 민 전 사장이 KT&G의 최대 수입상인 A사 회장 R씨로부터 미수채권의 원만한 해결 등을 대가로 시가 4,540만원짜리 시계를 받은 혐의(배임수재)에 대해서도 “시계를 준 R씨에 관해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실제 청탁이 있었는지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2009년 9~10월 부하 직원으로부터 승진 청탁과 함께 4,000만원을 받은 혐의도 공여자의 허위 진술 가능성이 있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민 전 사장에 대한 혐의가 모두 무죄로 결론나면서 검찰이 KT&G에 대해 백화점식 비리라며 대대적으로 수사를 벌이고도 부실하게 수사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검찰이 진술 이외에 객관적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고, 뇌물 공여 동기 등 진술의 신빙성을 더할 수 있는 조사도 부족했다는 것이 법원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뇌물 공여자가 진술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는데 이런 식으로 허위진술을 부각시키면 사실상 부정부패 수사가 불가능하게 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게다가 이날 검찰은 법 적용을 잘못했다는 대법원의 지적도 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정옥근 전 해참총장에 대해 “후원금을 받은 주체를 (정 전 총장 장남 명의의) 요트회사라 봐야 하므로 정 전 총장 등이 직접 받은 것과 동일하게 평가할 수 없다”며 “검찰이 단순 뇌물죄가 아니라 제3자 뇌물제공죄로 기소했어야 했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내려보냈다.
정 전 총장은 2008년 9월 유도탄 고속함 등의 수주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옛 STX그룹 계열사 두 곳으로부터 요트회사 후원금 명목으로 7억7,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3월 장남과 함께 구속 기소됐다. 1심은 검찰 주장을 인정해 정 전 총장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2심은 뇌물액수가 정확히 파악이 안 된다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이 아닌 형법상 뇌물죄를 인정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대법원 결정에 따라 검찰은 공소장 변경 방안 등을 검토해 파기환송심에서 정 전 총장의 죄를 다시 묻게 됐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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