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만화 속 희멀건 오로라 공주는 무대에서 맨발로 뛰어다니는 말괄량이 소녀로 탈바꿈 했다. 100년간 잠들어 광합성도 못 했건만 탄탄하게 근육 잡힌 공주를 깨우는 건 왕자가 아닌 일개 정원사 레오. 넘치는 건강미를 발산하는 두 사람의 파드되에는 서양 무용 100년의 역사가 압축돼있다.
22일 LG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한 댄스 뮤지컬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명성대로 매슈 본의 모든 특장을 녹인 작품이었다. 전작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에서 보여줬던 뛰어난 스토리텔링 솜씨는 이번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서도 발휘됐다. 단순한 원작에 영화, 소설 모티프를 가미해 비트는 방식을 이번에도 사용해 공주와 키스하는 이웃나라 왕자를 뱀파이어로 바꿨다(정원사 레오가 뱀파이어가 돼 공주를 100년간 기다린다).
이미 2012~2013년 월드투어에서 호흡을 맞춘 뉴 어드벤처스의 간판 무용수 애슐리 쇼(오로라 공주), 크리스 트렌필드(레오)는 우승 직후 갈라쇼를 펼치는 피겨 페어선수들처럼 시종일관 여유롭게 극을 리드한다. 고전 발레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단단한 체격의 애슐리를 어깨에 태우거나 안아 올리는 크리스의 몸짓은 고음의 넘버를 매끄럽게 불러 넘기는 뮤지컬 배우의 노래를 연상케 했다. 무대에서 두 사람 이상으로 빛나는 건 새로 창조한 캐릭터인 마녀 카라보스의 아들, 카라독이다. 1인 2역을 맡은 아담 마스켈은 패션모델 출신의 우월한 비율을 앞세워 공주를 유혹하는 나쁜 남자 역을 제대로 소화한다.
서사만큼이나 선보이는 춤 역시 제대로 비튼다. 1, 2막에서 무용수들은 19세기 유럽 궁중 복식을 하고 맨발이거나, 구두, 부츠, 스니커즈를 신고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탄생했던 마리우스 프티파 시절의 발레 테크닉을 구사한다. 발 끝 ‘푸앙트’만 빼고 다 바꿔 클래식 발레라기보다 컨템포러리에 더 가깝다. 여성 무용수들의 군무로 이뤄지는 고전 발레 특유의 ‘백색 발레’는 흰색 파자마를 입은 건장한 남성 무용수들이 담당한다. 100년 뒤 공주가 잠에서 깨는 21세기에는 일렉트로닉한 효과음이 추가된 힙합, 레이브 댄스 등을 추기도 한다. 발레, 현대무용, 탭댄스, 사교댄스가 뒤섞인 몸짓은 시종일관 에너지가 넘친다. 구체관절인형으로 아기 오로라의 움직임을 표현하고, 요정과 마녀에게 작은 날개를 달아주는 등 유머 넘치는 소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근육질 남성 무용수, 깃털 의상, 검은색 눈 화장 등 매슈 본의 이전 작품 특징이 반복되는 건 아쉽다. 녹음반주의 음질이 무대 수준과 동떨어질 정도로 나쁘고, 카라독과 레오 대결이 바로 ‘어제’ 치러졌다는 자막 후 오로라가 레오 사이에서 낳은 아기를 안고 나오는 등 앞뒤 맥락이 맞지 않는 설정도 옥의 티로 남는다. 공연은 7월 3일까지. (02)2005-0114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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