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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세금! 니가 더 내라?

입력
2016.06.2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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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은 세금을 과도하게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는 정부가 세금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에 증세보다는 감세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모범적인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웨덴에서도, 세금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실제로 1950년대 스웨덴 사민당이 판매세를 도입하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반대했다. 사민당 정부가 복지확대를 위해 증세한다고 해명했지만, 사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중 39%만이 증세를 지지했다. 스웨덴 시민들은 우리는 충분히 세금을 내고 있으니 만약 세금이 더 필요하다면 부자들이 더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금 내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없다. 더욱이 증세가 서민과 중산층의 세금 부담을 늘리는 것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보면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확대”는 그야말로 최고의 국정운영 전략이다. 세금을 더 걷지 않아도, 복지를 확대할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은 정치가 어디 있겠는가. 저소득층도, 중산층도, 부유층도, 기업도 모두가 만족할 묘수가 아닌가.

하지만 세상에 그런 꽃놀이패는 없다. 정부는 세출 구조를 효율화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지난 3년의 경험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확인시켜주었다. 진실은 박근혜 정부가 소득세 감면제도를 개편하고, 간접세인 담뱃세를 인상하는 방식으로 증세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는 벌금, 과태료 등 징벌적 과세와 함께 국가부채도 늘렸다. 사실상 복지공약도 지키지 못하면서 서민증세를 하고, 나랏빚을 늘린 것이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증세는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은 알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0%가 “박근혜 정부가 증세하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확대”라는 공약(空約)은 서민의 세금 부담을 늘리고, 살림살이를 악화시키는 “복지확대 없는 서민증세”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야당이 시도하고 있는 법인세율 인상은 바로 이런 불공정한 현실에 분노하는 여론을 대변한 것이다. 하지만 법인세율 인상만으로는 현재 한국사회에 필요한 복지 재원을 마련할 수 없다. 부자증세를 더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스웨덴은 고사하고, 우리가 OECD 평균수준의 복지를 지향한다고 해도, 추가로 필요한 복지재원만 대략 170조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모든 시민이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기 위해 더 내놓지 않으면 마련하기 어려운 재원규모이다. 정부가 나서서 풀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도 정부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4대강과 자원외교로 수십조원의 세금을 낭비하고, 증세는 없다고 큰소리치며 서민증세를 하는 정부를 신뢰할 멍청한 국민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증세 논란의 핵심에는 국가에 대한 신뢰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함께 나누어 쓸 돈과 부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일을 담당할 신뢰할 수 있는 정부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실제로 우리 국민이 민간보험에 내는 돈을 세금으로 더 낸다면 우리는 모든 국민이 추가적인 비용부담 없이 의료서비스와 노후를 보장받는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다.

법인세율을 높여서 복지재원으로 쓸 수만 있다면, 법인세 인상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정부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쌓아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법인세 인상은 공정한 세금부과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세금이 공정하게 걷히고, 그 세금이 시민을 위한 복지에 쓰이고 나서야 사람들은 증세에 동의할 것이고, 우리는 지금보다 더 큰 복지국가를 상상할 수 있다. 공정한 과세가 먼저고, 보편적 증세는 그다음이다. 정부가 문제이지 증세가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증세정치의 ABC이다.

윤홍식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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