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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10기 한곳에 몰리는데… 안전성 평가는 밀집 위험성 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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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10기 한곳에 몰리는데… 안전성 평가는 밀집 위험성 간과

입력
2016.06.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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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장안읍과 울산 울주군 서생면이 세계 최대 원전 밀집 지역이 될 것이란 우려가 큰 가운데 정부가 원전 10기가 집중될 이 지역의 안전성 평가에서 원전 1기의 개별 심사와 유사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예상치 못한 대형 자연재해가 발생할 경우 서로 인접한 원전에 동시에 문제가 생기거나 한 원전의 사고가 다른 원전에 미칠 영향 등 원전 ‘다수(多數)호기’ 위험성을 외면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22일 본보가 입수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다수호기 리스크 평가 규제지침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국내 원전의 인허가는 개별 원전의 안전성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발급되고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류용호 KINS 책임연구원은 “개별 원전 안전성 평가는 부지 내 다른 원전이 안전하게 운전된다는 가정 아래 이뤄진다”며 “원자로 손상이나 방사능 누출 같은 중대사고 상황에서 다수호기 원전이 서로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규제 기준으로는 원전이 다수 모여 있는 곳의 안전성 평가가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다. 작년 12월 발간된 이 보고서는 지난 9일 열린 제56회 원자력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원들에게 처음 공개됐다.

신고리 5ㆍ6호기 건설허가를 신청한 한국수력원자력과 심사를 담당한 KINS는 대형 재해가 발생해도 “원전들이 핵심 설비를 공유하지 않고, 각 원전별로 사고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도록 설계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예상치 못한 재해가 발생해 원전 안전시스템이 설계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여러 호기에 동시에 중대사고가 발생할 경우에 대해선 국내 원전 대부분의 안전성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도 “전력망이나 송배전설비, 일부 냉각기기 등은 원전끼리 공유돼 있다”며 “다수호기 사고 가능성 평가가 적절히 수행됐는지 불분명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도 KINS는 신고리 5ㆍ6호기 건설허가안에 적합 판단을 내렸다.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 들어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3~6호기 조감도. 3ㆍ4호기는 준공을 앞두고 있고, 5ㆍ6호기는 건설허가 삼의 중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 들어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3~6호기 조감도. 3ㆍ4호기는 준공을 앞두고 있고, 5ㆍ6호기는 건설허가 삼의 중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한수원이 신고리 5ㆍ6호기를 짓겠다는 울산 울주군 서생면 일대에는 이미 신고리 3ㆍ4호기가 건설되고 있다. 각각 오는 8월과 내년 3월 준공 예정이다. 인접한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고리 1~4호기와 신고리 1ㆍ2호기까지 합치면 신고리 5ㆍ6호기가 들어설 경우 이 지역 원전은 총 10기가 된다. 원전 10기가 몰려있는 지역은 전 세계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원전 부지의 사고 빈도는 원전 수와 직결된다. 인접해서 운영되는 원전이 많을수록 위험이 증가한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한 원전에서 일어난 사고가 옆 원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동시에 여러 원전이 피해에 노출되는 위험도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0~2015년 보고된 원전 사고나 고장 249건 가운데 2기 이상의 원전이 동일한 외부 요인으로 같은 날 멈춘 적이 고리와 한울, 한빛 원전에서 총 4차례 있었다. 2003년 9월 태풍 ‘매미’가 북상했을 때는 고리 원전의 송전선로가 고장 나 이틀에 걸쳐 고리 3ㆍ4호기와 고리 1ㆍ2호기의 가동이 차례로 정지됐다. 또 매미가 만들어낸 각종 비산물(바람에 날리는 물질)이 월성 원전까지 날아간 탓에 월성 2호기도 일부 기기 손상으로 멈춰 섰다. 태풍 하나에 원전 5기가 정지된 셈이다. 또 송전선로 낙뢰 손상으로 2010년 7월엔 고리 1ㆍ2호기, 2002년 11월엔 한빛 5ㆍ6호기가 멈춰섰다. 2006년 5월엔 해양생물 유입 때문에 한울 1ㆍ2호기의 터빈과 발전기 가동이 중단됐다. 류 연구원도 “다수호기가 영향을 받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어 후속 위험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는 다행히 대형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원전이 더 늘면 위험은 커질 수 밖에 없다.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고리 원자력발전소 전경. 오른쪽부터 차례로 1~4호기. 인근에 신고리 1ㆍ2호기도 가동 중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고리 원자력발전소 전경. 오른쪽부터 차례로 1~4호기. 인근에 신고리 1ㆍ2호기도 가동 중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원전은 부지 선정의 어려움과 경제성 등을 감안해 보통 한 부지에 2기 이상을 짓는다. 그러나 한 부지에 6기 이상 운영하는 초대형 단지는 전 세계에 11곳 밖에 없다. 세계 188개 원전 부지의 6%에 불과하다. 다수호기의 위험성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방법도 아직 정립돼 있지 않다. 환경단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의 장다울 기후에너지팀장은 “캐나다 당국은 원전 운영사에게 2017년까지 다수호기 안전성 평가 방법을 개발하도록 압박하고 있다”며 “원전 부지 4곳이 모두 초대형 단지인 우리나라는 원전 밀집지에 대한 안전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고리 5ㆍ6호기 건설허가 심의는 23일 57회 원안위 회의에서 이어진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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