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강요 정책 영국에 안 맞아”
“사회비용 증가, 혐오 만연 우려”
“국제 교역 단절, 겁주지 말라”
VS
“나는 영국인이자 동시에 유럽인”
“탈퇴파 인종주의 민낯 드러나”
“EU 밖에선 경제 협상 어려워져”
22일(현지시간) 런던에서는 ‘브렉시트(영국의 EU탈퇴)’ 투표에 돌입하기 직전 막바지 유세가 한창이다.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탈퇴에 투표하라(Vote Leave)’와 유럽 잔류 캠페인인 ‘유럽 안에서 더 강한 영국(Britain Stronger In Europe)’으로 나뉜 영국인들은 각자가 믿는 바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양측은 아침과 저녁 출퇴근 시간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 앞에서 경쟁적으로 피켓을 들고 스티커와 팸플릿을 돌렸다. 홍보에 참여하는 이유를 묻자 두 진영 지지자들은 쟁점을 하나씩 짚어가며 차분히 답변을 내놓았다.
최대 쟁점은 이민과 경제
런던 중서부 풀럼(Fulham) 지역에서 만난 타마라 드라가즈(72)는 잔류파가 된 이유를 묻자 “나는 인종차별을 하는 국가에 살고 싶지 않다. 그게 주된 이유”라고 답했다. 조 콕스 하원의원이 “영국 우선”을 외친 테러리스트에 피살되고,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UKIP) 대표가 시리아 난민 사진을 사용해 이민자 공포를 자극하는 포스터를 사용하면서 탈퇴파가 보여준 ‘인종주의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주장이다. 그는 또 “시리아 난민의 수용은 EU 잔류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국가의 의무임에도 탈퇴 진영이 EU에 남으면 난민이 몰려들 것처럼 거짓된 주장을 계속 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에서 가장 인종구성이 다채로운 도시 중 하나인 런던에서는 탈퇴 진영 지지자들도 이민문제를 다루기 조심스러워했다. 웨스트민스터 지역에서 만난 존 리첨(42)은 재정위기에 빠진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 등 공공복지 문제를 지적하며 “이민자가 지나치게 많이 몰려들면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UKIP 등 극우진영에서 나온 인종주의적 의제에 비판적이었다. “한 파키스탄계 영국인에게 왜 탈퇴를 지지하냐고 물었더니 불가리아인이 도둑질을 많이 해서라더라”고 귀띔하며 “혐오가 만연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잔류 진영이 강하게 내세워 온 경제 문제를 꺼내자 이번엔 탈퇴 진영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얼스 코트역 근처에서 만난 모하멧(37)은 잔류파에서 주장하는 ‘국제경제 참여가 어렵게 된다’는 말을 꺼내자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EU에서 탈퇴한다고 영국이 유럽이나 미국과 교역을 완전히 단절하는 것도 아닌데 잔류 진영이 지나치게 겁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잔류파는 유럽에 남을수록 더 유리한 무역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피터 오브륀(30)은 한국에서 왔다는 기자의 말에 “EU 밖에 있으면 경제협상이 어렵게 된다. 한국도 영국이 아닌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가령 중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들과 별도로 무역협정을 체결해야 할 때, 유럽시장을 등에 업고 있는 것과 영국 시장만으로 어필하는 것 중 어느 쪽이 유리한지는 명확하다”고 말했다.
국가 정체성은 영국 정치 구도에도 영향
브렉시트 문제가 영국의 ‘국가정체성’에 관한 문제라는 시각도 있었다. 리첨은 “영국은 유럽과 다르다”며 “EU에서 강요하는 유럽적인 정책을 따라가는 것이 영국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데이비드 아부라피아 캠브리지대 역사학과 교수가 이끄는 ‘영국을 위한 역사학자모임’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영국은 중세 이래로 유럽과는 다른 독자적인 정치문화를 형성해 왔다”며 “EU가 좀 더 각국의 주권을 존중해야 잔류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반면 잔류파의 오브륀은 “물론 영국인이라는 민족적 연대보다는 유럽인이란 기능적 연대가 덜 와닿는 부분은 있을 것”이라면서도 “나는 영국인이자 동시에 유럽인으로 성장해왔다. 둘은 분리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유엔 자료에 따르면 영국인 120만명이 EU 회원국에 거주하고 있다.
당파성 없는 투표지만 런던 시민들은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도 거침없이 드러냈다. 투표결과는 차기 총리로 유력한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과 데이비드 캐머런 현 총리,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의 정치적 입지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잔류파의 드라가즈는 “존슨이 총리직을 노리면서 노골적인 혐오의 정치를 구사하고 있다”며 “그런 사람이 이끄는 영국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리첨은 “캐머런이나 코빈도 한때 브렉시트 지지 발언을 했었다”며 주류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를 비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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