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조성 정황 드러나
회삿돈으로 본인 회사 사고 팔아
계열사 차린 후 일감 몰아주기도
대우조선해양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남상태(66) 전 대우조선 사장의 금고지기로 지목된 건축가 이창하(60)씨가 비자금을 조성한 구체적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건축설계 회사를 대우조선이 인수하도록 한 뒤, 1년 만에 헐값으로 측근에게 되팔아 5억여원의 차익을 남겼다. 그리고는 또 같은 업종의 회사를 대우조선 계열사로 새로 차려 일감을 몰아준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2006년 3월 남 전 사장 취임과 함께 대우조선해양건설 전무로 영입된 이씨는 이듬해 4월 이 회사의 계열사로 편입된 디에스온(옛 이창하홈)의 지분 51%를 가진 최대주주가 됐다. 2008년 6월 유상증자를 거친 뒤에는 지분율이 67.55%까지 상승했다. 남 전 사장과 친밀했던 그는 디에스온은 물론, 대우조선건설에서도 사실상 전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상한 거래는 뒤이어 시작됐다. 2008년 12월 17일 디에스온은 이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건축설계 전문업체 ‘포엠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포엠건축)의 주식 전량을 6억3,962만원에 인수한 뒤, 사명을 ‘아유디자인컨설턴트종합건축사사무소’로 바꿨다. 그로부터 불과 1년 후인 2009년 12월 31일, 디에스온은 아유디자인 지분 100%를 과거 포엠건축 관계자 3명에게 고작 1억원에 매각했다. 디에스온에게는 5억4,000만원 상당의 투자 손실이, 포엠건축 측에는 같은 액수의 이익이 발생한 셈이다. 이 돈의 일부가 이씨의 비자금이 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다.
의심스런 대목은 또 있다. 디에스온은 2010년 3월 2일 자본금 3억원을 들여 아유디자인과 동종 업체인 ‘에이유디씨종합건축사사무소’를 계열사로 신규 설립했다. 대표이사 김모(52)씨는 포엠건축에서 이씨와 함께 일했던 동료로, 당시 아유디자인 대표이기도 했다. 두 회사의 주소지도 같은 빌딩에 층만 달랐다. 2개월 만에 사실상 같은 회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5억여원의 투자손실을 감수한 아유디자인 매각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이후 에이유디씨는 대우조선과 그 계열사들에서 일감을 집중 수주했다. 2010년 전체 매출 40억원 가운데 22억원(55%)이 대우조선건설(12억원) 디에스온(6억원) 등과의 거래였고, 2011년(총 매출 39억원 중 15억원)도 내부거래의 비중이 높았다. 2012년은 아예 매출 20억원이 전부 대우조선(14억원)과 대우조선건설(6억원)에서 나왔다. 전직 대우조선 관계자는 “아유디자인과 에이유디씨는 대우조선에서 설계용역을 수주받아 재하도급을 주는 방식으로 많은 이익을 올렸고, 그 과정에서 리베이트를 받아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에이유디씨는 대우조선 부실 사태가 터진 지난해 폐업했다.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2012년 3월~2015년 3월 대우조선의 최고 재무책임자(CFO)를 지낸 김갑중(61) 전 부사장에 대해 수조원대 분식회계에 가담한 혐의로 이날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에게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법 위반과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업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가 적용됐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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