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가리켜 일만 팔천 신(神)들의 고향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풍속이 음사(淫祀)를 숭상해 산, 숲, 내와 못, 언덕, 나무와 돌에 모두 신의 제사를 지낸다’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곳곳에 신을 모셨다. 이러한 풍습은 오늘날에도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마을 곳곳에 자리 잡은 신당(神堂)이 그것이다.
지난 2008∼2009년 제주전통문화연구소의 신당조사팀장을 맡아 제주의 신당 전수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 신당의 숫자는 392개소. 보고서 발간 이후에 추가로 확인된 숫자까지 합하면 400개소 가까운 신당이 존재하고 있었다.
신당은 신앙민(단골)들에게는 최고로 신성한 곳이다. 가정의 안녕과 가족의 생로병사를 관장하는 신이 기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에게 세배를 드리는 의식인 신과세제를 위해 당에 갈 경우에는 최소 3일간 돼지고기도 먹지 않는 등 지극정성으로 몸조심을 한다.
이처럼 마을 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신당들도 최근 개발바람 앞에 속절없이 훼손되고 있다. 현재의 속도로 개발행위가 진행될 경우 신당의 훼손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제주도의 신당은 대부분이 사유지에 위치하고 있기에 대책마련도 쉽지 않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2년 전 도로확장 과정에서 성산읍 성산리에 위치한 일뤠당이 사라졌다.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에 다르면 당시에 행정당국에 보존대책 마련을 주문했으나 관련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묵살됐다고 한다.
사유지에 위치한 제주시 오등동 죽성마을의 죽성설새밋당은 토지의 주인이 허물어버리면서 원형이 사라졌다. 이후 몇몇 뜻있는 이들이 설새밋당 되살리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으나 사유지라는 한계 때문에 성과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도평마을 뱅디대통밧당과 조천읍 함덕본향당의 경우 공동주택이 건립되면서 신당의 원형이 크게 훼손됐다. 함덕본향당의 경우 마을주민들이 나서 건물 한쪽 귀퉁이에 새로이 신당공간을 조성하면서 그나마 명맥을 잇고 있으나, 뱅듸대통밧당의 경우 공동주택의 울타리가 신당을 에워싸면서 거대한 성벽에 갇힌 형국이다.
이와 달리 신의 형체라 할 수 있는 신목(神木)이 고사하면서 원형이 크게 달라진 경우도 있다. 애월읍 상가오당빌레당의 경우 마을에서 새로운 나무를 심어 정비를 하면서 예전의 모습과는 달라졌지만 그나마 보존대책은 마련됐다. 하지만 소길당팟할망당은 고목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인근 토지주가 밭을 정비하면서 주변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사유지가 아닌 바닷가와 하천변에 위치한 신당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바닷가의 경우 해안도로 개설로 인한 훼손 우려가 있고, 하천변에 위치한 신당도 하천정비라는 이름으로 지형이 크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도로개설 과정에 사라진 신당으로는 내도알당, 신촌남당, 우도 똥내미구석돈짓당 등이 있다.
물론 대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도시개발 이후 도심공원에 당을 새롭게 조성하는 경우로 노형너븐드르본향당, 삼양가물개당팟할망당 등이 이에 해당한다. 월랑동 본향다랑굿막개낭당은 어린이놀이터가 있음에도 오늘날에도 단골들이 찾는 등 당의 기능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행정당국에서의 적절한 보존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제주도의 신당 중 월평다락쿳당, 와흘본향당, 송당본향당, 수산본향당, 세미하로산당 등 5개소가 민속자료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을 뿐이고 나머지 신당은 보호대책이 전무하다.
신당이 위치한 토지를 매입하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차선책으로 훼손위기를 맞은 신당들을 마을 공동 소유의 토지로 이사를 하는 방안도 있으나 땅값 상승으로 비용이 만만치 않다. 제주도 곳곳에서 진행되는 개발은 천혜의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수 백 년 이어져온 고유의 전통문화도 함께 파괴하고 있다.
강정효 (사)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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