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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우리가 놓쳐 온 정치적 상상력

입력
2016.06.2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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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민간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와 함께 향후 대한민국 사회의 ‘시대정신을 묻는다’는 주제로 토론회를 했다. 나도 개인적으로 오피니언 리더들의 인터뷰 데이터 분석과 해석에 참여했던 터라, 청중들로부터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궁금했다. 두 가지 질문이 인상에 남았다. 첫째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최근 논의되는 ‘기본 소득’ 제도가 중요한 솔루션으로 도출되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고, 둘째는 제도와 문화, 인간 행위와 가치 지향에 대한 논의와 별도로 보다 많은 ‘정치적 상상력’이 발현될 여지는 없었냐는 문제 제기였다.

그 두 상이한 질문들이 유독 기억에 남은 까닭은, 심정적으로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사람들이 마음이 급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예전의 ‘무상급식’ 논쟁 때도 그랬지만, 우리는 논쟁적인 이슈에 관심을 기울이고 단칼에 적용할 수 있는 해법을 선호한다. 문제는 그렇게 열광하는 해법이 사회를 움직이는 수많은 퍼즐의 한 조각에 불과하고, 그 퍼즐 조각을 어떻게 맞출 것이냐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이견의 배경에 있는 생각과 정서들을 존중해야 한다. 정치적 상상력 역시 ‘기득권 세력’과 같은 손쉬운 ‘상상의 적’을 상정하는 대신, 다양한 사람들의 복잡다단한 행위들을 이해하고 포섭할 수 있는 전략적 사고를 함양해야 한다.

그러한 전략적 사고와 유연성이 결여된 담론은 필연적으로 교착 상태를 만들어 낸다. 마치 1차 세계대전의 유명한 서부전선처럼, 뻔히 상대방에게 안 통할 것을 알면서 “돌격 앞으로!”를 외치고 그래서 막대한 희생만 초래한다.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입지가 공고해지는 것은 대립 구도를 형성하는 지휘관들이지만, 교착이 계속되고 희생은 늘어나는데 갈수록 환경만 열악해지면 결국 병사들의 원성도 높아진다.

우리가 당면한 교착 상태는 무엇일까. 나는 사회 그룹마다 상이한 ‘도덕 경제’(moral economy) 관념에 대한 무시가 가장 큰 장벽이라고 본다. 진보 그룹은 복지를 위한 증세를 반대하는 보수 진영이 단지 이기적일 뿐이라고 치부하고, 보수 그룹은 무조건 증세를 외치고 기업을 비난하는 진보 진영이 위험하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경제 운용의 도덕성에 대한 관념은 이렇듯 상이하건만, 저성장 시대에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공통적인 화두인 “필요한 재원 마련 방법을 어떻게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조정할 것인가”로 의제를 모으고 깊이 있게 분석하는 주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수준도 언젠가부터 정체되어 있다. 민주주의가 1인 1투표와 다수결의 원칙만은 아닐 텐데 말이다. 기존 진보 세력들의 정부에 대한 비판과 권력 중심적 대안은 오늘날 시민들이 겪고 있는 온갖 위험의 이유를 온전히 다 설명해 내지는 못한다. 최근에 목도하듯, 우리가 시장과 사회에서 겪는 다양한 위험은 결국 ‘보통사람’이 위험해서 생겨난다. 위험한 사람들과의 위험한 상호작용이 제도와 습속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그간 누적된 국가 성장 과정이 사람과 관계를 그렇게 조각나고 위험하게 만들었다.

앞으로의 사회과학적 성찰과 정치적 상상력은 온전히 사람, 혹은 주체의 재생산 방식과 대안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프랑스의 근대화 역사를 보면 계몽사상가들은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우선적으로 보다 나은 인간을 만드는 것을 명시적인 목표로 삼고 노력했었다. 가치 판단을 떠나서 이 나라에서 박정희 역시 새롭게 ‘노동하는 주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박정희 모델보다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각 사회 주체들이 노력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해묵은 정치적 비판을 넘어서, 앞으로 우리의 상상력과 실천이 지향해야 할 총론과 각론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김도훈 아르스프락시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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