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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한달 뒤 남편 정관수술.. 살아야 했다" 소록도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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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한달 뒤 남편 정관수술.. 살아야 했다" 소록도의 슬픔

입력
2016.06.2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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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소록도병원에 특별법정

검사실, 감금실 등 현장검증

국가 정책 여부, 강제성 등 따져

“수술해야 동거 허용 등 불이익

고령 한센인 매년 100여명 떠나

너무 늦지 않게 진실 가려지길”

정부 측은 “강제 수술 아니었다”

배상 대신 특별법 따른 보상 주장

20일 전남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 별관 2층 소회의실에서 정관절제ㆍ낙태 피해 한센인 139명의 국가 소송 항소심 특별법정이 열렸다.
20일 전남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 별관 2층 소회의실에서 정관절제ㆍ낙태 피해 한센인 139명의 국가 소송 항소심 특별법정이 열렸다.

hshs@hankookilbo.com

“기계를 넣어서 낙태를 했어요. 마취도 안 했는지 굉장히 고통스러웠어요. 하혈을 했지만 치료는 없었습니다.”

23살 봄이었다고 했다. 증인석에 앉은 70대 한센인 여성 J씨는 사랑하던 사내와 소록도에서 함께 살기 위해 태어날 피붙이를 마지못해 떼어낸 그날의 고통을 더듬었다. 그는 “낙태는 어떻게 됐어요?”라는 변호사의 물음에 담담하게 답했다.

20일 오전 전남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 별관 2층. J씨에게 끔찍한 기억을 심어준 그 병원의 소회의실이 이날 법정으로 바뀌었다. J씨를 비롯한 한센인 139명의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을 맡은 서울고법 민사30부(부장 강영수)는 이날 한센인들의 정관절제ㆍ임신중절 수술 피해 실상을 통한의 섬에서 직접 듣는 특별법정(6차 변론기일)을 열었다.

재판장은 변호사의 직설적 질문에 오히려 당황하며 J씨에게 “힘들면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했다. J씨는 자신이 아이를 뗀 지 한 달 뒤 남편이 정관수술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낙태를 피할 수는 없었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당시 사회상을 함축적으로 드러냈다. “가진 게 없으니 살려면 어쩔 수 없었죠. 돈이 없잖아요.” 극심한 편견과 배척에 한센인들이 죄인처럼 숨어살던 시절이었다. 노르웨이의 의사인 게르하트 헨리 아마우어 한센이 1873년 한센병이 유전병이 아니라 감염 정도가 낮은 전염병임을 밝혀냈지만 그들을 향한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그렇게 낙태와 정관수술이 이뤄졌다는 증언이었다.

올해 개원 100주년을 맞은 소록도병원에는 한센인 원고들, 전국 각지 정착촌에 사는 한센인과 자원봉사자 등 100여명이 모여 재판을 지켜봤다. 경기 남양주시에 사는 한센인 이모(67)씨는 재판을 보려고 첫 새벽 기차에 몸을 싣고 400㎞ 넘는 이 곳까지 내려왔다. 이씨는 “(소록도 인근) 오마도 간척지에 강제 동원된 기억 등 7년간 소록도에 살며 겪은 아픈 기억이 생생하다”며 “고령의 한센인들이 1년에 100여명씩 사망한다. 너무 늦지 않게 진실이 가려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재판의 쟁점은 ▦정관ㆍ낙태 수술이 국가정책이었는지 ▦국가 정책이었다면 왜 그랬는지 ▦피해자들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됐는지 등이었다. 한센인 측의 박영립 변호사는 “소록도 바다는 한센인의 눈물이요, 바람은 한센인의 한숨”이라며 “국가는 해방 이후에도 한센인 강제 격리수용, 정관수술ㆍ낙태, 학살 등 수많은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그런 인권유린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조영선 변호사는 “국가와 사회의 편견과 무지를 해소하고 한센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존감, 인간다운 삶과 재사회화를 추구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며 소송 이유를 밝혔다. 한센병은 3군 전염병 중 가장 낮은 단계의 전염력을 가진 질병으로 유전되지도 않고 성적인 접촉이나 임신 등으로 감염되지도 않는데 정관수술 등을 해야만 부부의 동거를 허용하는 등 불이익이 상당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현재 소록도에 사는 한센인 1만여명은 치유된 이들이다.

정부 측 박종명 법무법인강호 변호사는 “아픔을 겪었던 한센인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예를 표한 뒤 반박에 나섰다. 박 변호사는 “낙태ㆍ정관수술은 강제가 아니었다”며 한 서린 한센인들에 대한 위로는 “(공무원의 책임을 묻는 배상 대신) 특별법에 따른 보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측은 평생 한센인들을 돌본 의료진들을 내세워 정부 측의 불법행위가 아님을 설득하려 했다. 소록도에서 30년간 환자들을 돌본 김인권 여수애양병원장은 “당시 소록도는 한센환자의 아이를 키울 여건이 안 됐다. 예산은 환자를 위한 것이지 환자 외 아동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애들을 위한 인력도 시설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김 원장은 이어 “국가가 이들에게 피해를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판단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날 오후 태어난 아기의 시체를 해부했던 검시실, 도주했다 붙잡힌 한센인이 갇혔던 감금실, 강제 낙태수술이 실시됐다는 치료본관 터 등을 현장 검증했다. 납골당인 만령당에 들른 재판부는 잠시 묵념을 했다. 재판 과정에서 정부 측은 국무총리 산하 한센인 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활동한 변호사들이 특별법정에서 모두진술로 변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항변, 재판이 잠시 휴정되기도 했다.

소록도=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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