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상담 240건 중 51건
상해ㆍ살인미수 범죄로 이어져
처벌 기준 모호ㆍ대상도 까다로워
최대 10만원 범칙금ㆍ구류가 고작
제재 강화案 국회서 번번이 좌절
예방에 초점 맞춘 제도 정비 시급
지난 12일 황모(37ㆍ여)씨는 서울 청담동에 있는 배우 김민종씨 집 초인종을 연신 눌러댔다. “돌아가 달라”는 김씨의 계속된 요구에도 황씨는 요지부동이었고 결국 경찰에 체포됐다. 황씨의 스토킹 행위는 벌써 네 번째다. 지난해 9월에는 김씨 집에 몰래 들어가 침대에 누워있다가 불구속 입건됐고, 10월에도 초인종을 누르다 경찰에 붙잡혔다. 올 2월에는 인터폰을 부수며 “만나달라”고 소란을 피워 재물손괴 혐의로 입건됐다. 주거침입 혐의에 대해 법원은 벌금 50만원을 선고했으나 스토킹 행위로 받은 처벌은 범칙금 5만원이 전부였다. 경찰 관계자는 19일 “황씨는 김씨의 연인임을 주장하며 4번이나 신고된 악질 스토커임에도 주거침입 등 특별한 가해 행위가 없으면 범칙금을 끊는 것 외에 달리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스토킹 범죄의 정도가 도를 넘어서고 있지만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최근 일반인을 상대로 한 스토킹이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 4월 서울 가락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살인사건도 스토킹에서 비롯됐다. 가해 남성은 과거 연인관계였던 피해 여성을 찾아가 지속적으로 괴롭혔고, 피해자가 받아주지 않자 결국 살해했다. 스토킹이 흉악범죄의 전조 증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2014년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민우회의 분석에 따르면 240건의 스토킹 상담 중 상해, 살인미수 등 물리적 피해로 이어진 사례가 51건(21%)에 달했다.
문제는 스토킹 피해자들이 겪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비해 처벌 수위가 미미한 것은 물론, 기준도 모호해 가해자의 재범 의지를 꺾기엔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관련 제재 규정은 2013년 3월부터 시행 중인 경범죄처벌법이 유일한데 처벌은 최대 10만원 이하의 범칙금, 구류 또는 과료형이 고작이다. 처벌 대상도 3회 이상 이성 교제를 요구해야 하고 행위가 반복되더라도 명시적 거절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등 지나치게 까다롭다. 한 일선 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처벌 기준을 적용하기가 애매한 경우가 많아 경찰 조사를 받고 간 스토킹 가해자가 이튿날 다시 신고 당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여성가족부는 지난 1월 스토킹 가해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경찰도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혔음에도 3회 이상 교제를 요구한 경우’ 등 처벌 기준을 구체화한 방침을 일선서에 내려 보냈다. 하지만 이런 보완책 역시 피해자가 정신적 고통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증거를 구비해야 한다는 점이 한계다. 증거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와의 접촉이 불가피해 오히려 2차 피해를 유발할 가능성도 크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피해자 대부분이 가해자와 만남을 꺼리는데다 불특정 가해자가 괴롭히면 거절 의사를 내비치기도 마땅치 않다”고 지적했다.
스토킹 제재를 강화하는 법안도 국회 문턱을 넘는데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19대 국회에서만 3건이 발의되는 등, 15대 국회 때부터 관련 법안이 7건이나 발의됐으나 모두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을 지낸 A씨는 “스토킹이라는 행위 자체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아 굳이 새로운 법안을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제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스토킹 범죄를 막으려면 사후 처벌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춘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반복되는 연락 등 지나치기 쉬운 스토킹 초기 징후들이 중범죄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입법을 통해 스토커에 대해 정신감정이나 격리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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