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친구를 만나 오랜만에 한가롭게 점심을 먹었다. 새 시집에 실릴 원고를 다 정리했다는 말을 듣고 기쁜 마음에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한 사람은 나였다. 신춘문예를 통해 나보다 먼저 등단한 그녀의 시를 나는 습작시절부터 읽고 있었고, 그녀가 한국 문단의 기인으로 통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실제로 만나보니 이상한 점이 없지 않았다. 그녀는 잠이 퍽 많았고, 약속시간을 잘 지키지 못했다. 만날 때면 어김없이 선물을 주곤 했는데, 한 번은 샛노란 때타월을 건넨 적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건 모두 밖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친구는 누구보다도 이타적인 사람이다.
식사를 끝내고 나서, 나는 우리의 소비 패턴을 심각하게 문제 삼는 이성적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마음먹고 꺼냈다. 그들은 모두 제 밥벌이를 하고, 정이 깊어 궁색하게 사는 우리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좋은 사람들이다. 대화가 지나치게 심각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는 “사실 그들과 우리는 큰 차이가 없어. 그들은 잘 벌고, 우리는 잘 쓸 뿐이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친구가 깔깔대며 되받아 말했다. “그건 아주 큰 차이야. 너처럼 말하는 건, 흑인이 백인에게 자신은 검고 상대방은 흴 뿐 둘은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 우리는 허리를 꺾으며 웃었고, 내 머릿속에서는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신경림 시인의 시구가 떠올랐다.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