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 K씨는 경영상 큰 위기를 맞았다. 사소한 실수가 겹쳐져서 초래된 것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문제를 피할 수는 없다 생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 직원이 합심해서 노력하려던 순간, 우연히 소개받은 지인을 통해 그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었다. 소위 ‘인맥을 통한 사건 진화(鎭火)’에 성공한 것.
K씨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동시에 깨달음을 얻었다. ‘인맥이란 이렇게 중요한 거구나. 우리들만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면 정말 힘들었을 텐데…’. 그 일 이후 K씨는 인맥을 쌓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위기 모면의 경험이 너무도 강렬했던 것. 회사의 본질적 역량 강화보다 외부적인 관계형성에 너무 힘을 쏟는 게 아닌가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K씨는 어느 모임에서 알게 된 정보를 바탕으로 큰 프로젝트에 도전하기로 했다. 회사 역량에 비해 다소 무모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 일을 성사시켜 줄 결정적인 힘을 가진 사람을 소개 받았다. ‘겉으로 볼 땐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정부 부처 핵심 공무원들만 잘 구워 삶으면 무난하니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그 사람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진행했다. 꽤 많은 소개비도 건넸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일이 일그러졌다. 자기만 믿으라고 큰소리치던 그 실력자(?)는 자취를 감췄다. 일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거라는 기대로 마련해 두었던 자금, 인력, 제휴관계 들을 전부 원상회복시켜야 했다. 하지만 그 절차가 만만치 않았다. 상당한 금전적인 피해도 감수해야 했다. K씨는 결국 회사를 폐업하고야 말았다. ‘제가 무엇에 홀렸던 것일까요?’ 자신에게 제기된 여러 건의 소송사건을 자문해주는 나에게 K씨가 던진 하소연이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 그 어려움을 직시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정면돌파 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큰 고생하지 않고 운 좋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누구나 그 방법을 택하고 싶을 것이다.
‘요행 (僥倖): 뜻밖에 얻는 행운’ 요행을 바라는 것이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단순히 ‘요행을 바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 요행을 만나 어려움을 모면해 본 경험을 하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이 아닐까.
한 번 요행을 만나 어려운 문제를 쉽게 해결해 본 사람은, 다시 곤란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에도 요행을 바란다. 하지만 요행은 말 그대로 ‘뜻밖에 얻는 것’이다. 또한 내 실력이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철저히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요행만을 바라던 사람은 요행이 제때 주어지지 않거나, 요행이 심술을 부리는 통에 종국에는 낭패를 맞게 될 수 있다.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유수지위물야 불영과불행ㆍ흐르는 물이 구덩이를 만나면 그것을 메우지 않고서는 지나가는 법이 없다)’ 맹자 진심장구(盡心章句)에 나오는 말이다. 물이 흐르다 구덩이를 만나면 그 구덩이를 다 채운 다음에 앞으로 나아가지 훌쩍 건너뛰는 법이 없다. 건너 뛸 수도 없다. 인생살이도 그러한 것이다.
힘든 시간도 삶이다. 그 시간을 제대로 살아내지 않고 어물쩍 지나가려고, 후다닥 지나쳐 버리려고만 한다면 그렇게 쌓아 올린 삶은 장차 다가올 작은 타격 하나에도 무너져버릴 만큼 기초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구덩이를 힘들게 채워나가며 버텼던 시간들이 우리 삶을 지탱해 줄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내 주위 누군가가 요행을 만났다고 부러워하지도 말자. 그 요행이 그 사람에게 궁극적으로 복(福)이 될 것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쩌다 요행을 얻었다고 자랑하거나 들떠 하지도 말자. 우연히 얻게 된 유리한 조건들을 자랑하는 것은, 허약한 정신의 속성이다.
‘요행’. 생각할수록 참으로 요사스럽고 무서운 말이다.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목록 1번감이다.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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