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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와 친해지는 건 환상… 날 알아줄 한 사람을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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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와 친해지는 건 환상… 날 알아줄 한 사람을 찾으라

입력
2016.06.1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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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과 소통하려 들지 마라. 필요한 건 당신의 제멋대로를 지켜봐 줄 단 하나의 유대다. 게티이미지뱅크
만인과 소통하려 들지 마라. 필요한 건 당신의 제멋대로를 지켜봐 줄 단 하나의 유대다. 게티이미지뱅크

비사교적 사교성

나카지마 요시미치 지음ㆍ심정명 옮김

바다출판사 발행ㆍ212쪽ㆍ1만2,000원

미움받을 용기ㆍ가면사축 등

日 개인주의 철학의 원조격

“인간은 설비” 칸트 철학 바탕

자기중심적 건조한 관계 설파

‘미움 받을 용기’ ‘가면사축’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처세서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하나다. 눈치 보지 말고 멋대로 살라. 책들의 저자가 모두 일본인이라는 점은 유의미하다. 개인보다 집단이 우선시돼온 일본 사회에서 개인성의 발현은 늘 소수의 목소리였고, 척박한 토양은 이들을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싸움닭으로 키웠다.

일본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이 분야의 조상 격이라 할 수 있다. 칸트 전문가로 통하는 나카지마는 ‘일하기 싫은 당신을 위한 책’ ‘인생 반 내려놓기’ 등 제목만 봐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책들로, 눈치 보는 데 인생을 허비하는 일본인들에게 자유의 복음을 선포했다. 신간 ‘비사교적 사교성’은 그 중 인간관계론에 집중한다. 결론은 역시나 과격하다. 제멋대로 살되, 그 제멋대로를 진지하게 봐줄 한 사람만 확보하라는 것. 여기에 칸트가 교조로서 소환된다.

“칸트는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혈연관계를 싫어했고, 친구를 중심으로 하는 신뢰관계를 거부했으며, 성애를 중심으로 하는 애정관계를 혐오했다. 생각건대 이 모든 것은 상대방을 지배하려 할 뿐 아니라 상대방의 지배를 받으려 함으로써 인간에게서 이성과 영혼의 자율성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잘나서 외로운 남자 칸트는 그럼 평생 혼자였을까. 그가 예순 이후 매일 집에 손님들을 초대해 오찬을 열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형제, 친구, 가족은 일절 배제하고 철학자들도 철저히 소외시킨 그 자리에 칸트는 온갖 계층의 사람을 두루 불러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대화가 한창이다가도 제 것으로 떼어놓은 시간이 되면 칸트는 매몰차게 사람들을 돌려 보냈다. 그에게 친구란 “그저 소파나 쿠션처럼 그의 생활을 쾌적하게 해주는 ‘설비’일 뿐”이었으니까.

나카지마는 칸트의 ‘인간설비론’을 증오하면서도 자신도 그와 같은 인간임을 순순히 인정하며 제안한다. 만인과 친하게 지내려는 허황된 생각은 포기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주는 사람을 가지라는 것. “요새 유행하는 ‘유대’를 되살리라는 말이 아니다. 단 하나의 유대만 있으면 된다.” 그는 고립과 자립의 차이를 강조하며 “자기중심적인, 자립한 사람들 사이의 옅은 관계” “늘 내가 우선이고 상대방은 두 번째인, 자기희생 정신이 결여된 이기주의자들 사이의 건조한 관계”를 추천한다.

책이 주는 여분의 재미는 한때 일본 전통사회의 구석구석을 꼬집고 들쑤셨던 철학자가 세월이 흘러 일본 젊은이들과 대면하며 느끼는 충격을 구경하는 일이다. 개인성을 쟁취할 깃발로 삼았던 한때의 반항아는 정작 개인성을 먹고 자란 세대가 눈 앞에 나타나자 ‘왜 이렇게 눈치를 안 보냐’며 불쾌해하는 것이다. 고향과 지연, 학연에 집착하는 또래 세대에겐 구식이라며 독설을 퍼붓더니, ‘요즘 것’들에겐 자기가 사준 초밥을 자기보다 빨리 먹는데다가 사양하는 시늉도 안 한다며 투덜대는.

이쯤 되면 저자가 추구하는 건 집단에 포획된 개인성의 해방이 아니라 그냥 미워할 권리란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집단도 밉고 개인도 밉고 늙은 개인도 밉고 젊은 개인도 밉다. 이 세상을 증오로 칠해버리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게 노학자로서 옳은 태도냐고? “나는 지구온난화나 테러 대책, 정계 재편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지만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절실한 문제로 줄곧 고민해 왔다.”

저자에게 철학이란 사회적으로 온전히 무익한, 정치의 반대 개념이며 이것을 즐기고 원하는 재능을 가진 이들이 진짜 철학자다. 과연 개인성 분야의 과격한 조상답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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