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묻는 이른바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전세계의 눈이 영국으로 쏠리고 있다. 서구 언론은 통상관계가 변화해 금융 허브 런던이 힘을 잃고 유럽회의주의가 득세하면서 회원국들이 도미노처럼 EU를 탈퇴하는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우선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EU는 영국과 새로운 외교통상관계를 설정하는 협상을 벌여야 한다. 브렉시트 지지 진영은 이 협상을 통해 영국이 EU와 자국에 유리한 무역협정을 맺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EU측의 태도도 만만치 않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10일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브렉시트가 완전한 무역단절을 의미하지는 않으나 영국과 EU의 관계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특히 미국 금융자본이 유럽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던 런던은 ‘금융 허브’의 기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EU 잔류 캠페인을 지원한 JP모건이나 골드만삭스 등이 새 무역협정으로 인한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나 프랑스 파리를 새 유럽 본부로 삼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브렉시트는 한창 막바지 협상이 진행 중인 미국과 EU간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의 혜택을 영국이 받지 못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물론 EU도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14년 기준으로 약 2조 9,800억원, 독일에 이어 EU내 규모 2위다. 런던 소재 경제정책연구소(CEPR)의 예측에 의하면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대유럽 수출 45%뿐만 아니라 EU의 대영국 수출 16%가 통상 불확실성으로 축소된다. 2015년에는 그리스에 긴축정책을 강요하며 ‘그렉시트(그리스의 EU탈퇴)’도 감수하겠다던 EU가 영국에는 저자세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더욱 큰 문제는 브렉시트가 EU내 다른 국가의 유럽회의주의자들에게도 긍정적인 신호를 보낼 것이라는 점이다. 최악의 경우 덴마크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 반EU 세력이 강한 국가의 도미노 탈퇴로 EU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됐다. 헤더 콘리 미국 전략국제연구센터(CSIS) 유럽부문 대표는 “유럽회의주의 성향 국가들이 연대해 EU를 탈퇴하거나 주권 수호를 주장하며 브뤼셀 본부를 압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EU 중심국 중 하나인 프랑스에서도 마린 르펜 국민전선 대표가 ‘프렉시트’ 투표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시리아 난민을 비롯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몰려드는 이민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유럽 각국에서는 EU의 이민자 분배정책에 반대하는 유럽회의주의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브렉시트는 국제 안보질서에도 불안요소다. 최근 우크라이나와 시리아에서 러시아의 확장을 견제해온 서유럽의 힘이 약화되면 유럽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앞세우던 미국의 세계전략에도 대대적 수정이 불가피하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NATO 사무총장은 6일 “역내 안보 보호를 위해 영국이 EU에 남아있길 바란다”고 말했고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도 15일 “브렉시트가 NATO 결속을 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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