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ㆍ해운업 구조조정 여파에
1년새 부실채권 1조4000억 급증
대손충당금 적립율도 81% 불과
중앙회 반대로 일시적립도 난관
금융당국이 기업 구조조정 여파로 부실채권이 급증한 농협은행에 대해 기업대출 시스템 개선방안을 담은 자구안을 제출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농협은행을 상대로 진행한 종합검사에서 농협은행의 기업대출 관리 시스템이 상당히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농협은행은 최근 1년 새 대출해 준 기업들이 잇따라 부실에 빠지면서 부실채권이 1조4,000억원 급증하며 건전성에 심각한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15일 금융권 및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농협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를 마무리 짓고 조만간 최종 결론을 내놓을 예정이다. 현재 검사 내용을 막바지 분석하는 단계지만 당국은 농협은행의 기업대출 관리 시스템에 상당한 허점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부실기업을 가려내거나 대출해 준 기업에 대한 리스크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당국은 어떤 식으로든 농협은행의 기업 관리 시스템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농협은행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농협은행으로부터 개선안을 제출 받아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식의 후속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아직 검사 내용을 면밀히 들여다 보는 중이지만 농협은행은 내부통제를 비롯해 기업대출 관리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농협은행의 기업대출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수은행이지만 일반 고객을 상대로 예금과 대출을 늘리면서 승승장구하던 농협은행이 갑자기 코너에 몰린 건 조선ㆍ해운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한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농협은행이 2000년대 중반 적극적으로 돈을 댄 조선ㆍ해운사들이 휘청거리면서 부실채권(고정 이하 여신)이 급증한 탓이다. 지난해 말 기준 농협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는 4조2,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조4,000억원이나 급증했다. 이 여파로 농협은행이 지난해 쌓은 대손충당금만 1조3,000억원에 달한다. 농협은행 고위관계자는 “농협이 특수은행이다 보니 지역경제 등을 고려해 다른 은행이 발을 빼도 대출을 그대로 가져간 탓”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농협은행이 앞으로도 조선·해운업에 빌려준 대출에 발목이 잡힐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감원에서 제출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4월말 기준 농협은행의 조선·해운업 여신 규모는 6조5,472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충당금을 충분히 쌓은 시중은행과 달리 농협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 비율은 81.5%에 불과하다. 충당금을 충분히 쌓지 않아 충격을 흡수할 여력이 약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농협은행의 모회사인 농협금융지주는 이 참에 누적된 잠재부실을 한번에 털기 위해 충당금을 일시에 쌓는 ‘빅 배스(Big bath)’를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이 또한 연내 추진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결정권을 쥔 농협중앙회가 ‘빅 배스’ 때문에 농협금융에서 받는 배당금을 줄일 수는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어서다. 2조~3조원에 달하는 충당금이 일시에 쌓이는 경우 중앙회에 지급하는 배당금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지주와 중앙회 간 갈등은 없다”며 “입장 차를 좁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