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통에 얻은 이름 말소 않고
이중신분 철저히 범행에 이용
전과 38범 상습절도로 구속
남북 이산가족 찾기 행사가 한창이던 1983년. 한 아이의 엄마였던 조모(당시 39세)씨는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생사조차 몰랐던 친어머니와 상봉했다. 1950년 6ㆍ25전쟁 통에 인천으로 떠난 피난길에서 생이별한 지 33년 만이었다. 다시 만난 가족들은 조씨에게 성(姓)과 이름부터 바꾸길 권했다. 원래 성인 조씨는 고아원에 있던 그를 입양해 키워준 양아버지의 성을 물려 받은 것이었다. 조씨는 친아버지의 성인 김씨로 이름을 변경해 호적에 올린 뒤 주민등록까지 마쳤지만 기존 성ㆍ이름도 말소하지 않고 그대로 뒀다.
사실 조씨는 전쟁고아로 지낼 때 익힌 소매치기 기술로 일찌감치 범죄에 손을 댄 터였다. 16세부터 고아원 동료들과 무리를 지어 범행을 일삼았고, 친어머니와 다시 만났을 당시에는 이미 수차례 절도 전과가 있었다. 주변에서는 그가 기존 이름을 없애지 않은 이유를 두고 “기존 기록을 말소하면 전과기록도 이전돼 가족에게 전과기록을 들킬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라며 수군거렸다.
하지만 조씨는 이중신분을 철저히 범죄에 이용했다. 범행이 발각되면 유리한대로 이름을 바꾸는 수법을 썼다. 서울 재래시장들을 중심으로 소매치기를 하면서 절도 전과만 38차례나 되는 그는 평소에는 조씨로 활동했으나, 집행유예 기간에 저지른 범죄가 탄로날 경우 김씨 행세를 하며 가중 처벌을 피해 왔다.
30년 넘게 이어진 조씨의 이중 생활은 지난 3월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100만원 상당이 들어있는 지갑을 훔치다 잡히면서 들통났다. 그를 검거한 경찰은 “조씨가 김씨 성의 또 다른 이름을 사용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김씨의 신상정보를 확보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두 사람의 사진 및 지문관계 비교를 의뢰해 동일인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조씨를 상습절도 혐의로 구속했다고 15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두 이름으로 저지른 모든 범행을 한 사람의 범죄 경력으로 정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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