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4일 발표한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에서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가 독점해 온 전력 판매와 가스 도매 분야를 민간에 개방하기로 한 것은 경쟁 체제를 도입해 소비자 편익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지금까지는 한전이 전력거래소를 통해 기업이나 소비자들에게 전력을 독점적으로 판매해 왔다. 물론 전기사업법상 민간 사업자도 전력판매 시장에 참여할 수 있지만 송ㆍ배전망을 구축해야 하고, 한전과 가격 경쟁까지 벌여야 해 실제 전력 판매를 하는 사업자는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에너지 신산업 사업자들이 소비자에게 직접 전력을 판매할 수 있다. 또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산업현장에도 민간기업이 한전처럼 전기를 팔 수 있다. 이 경우단일화한 전기요금제 대신 통신요금제처럼 소비자들이 다양한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고, 차세대 성장 동력인 에너지 신산업도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은 2000년대에 들어 전력판매 부문에 경쟁 체제를 도입했다. 일본도 지난 4월 전력 시장을 전면 개방했다. 이후 이동통신업체인 소프트뱅크와 케이블TV 업체인 제이콤 등은 휴대폰과 케이블TV, 전기요금을 결합해 전체 요금을 낮춘 다양한 결합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전력 판매 시장 개방이 오히려 전기요금을 올릴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전기요금이 치솟자 이를 낮추기 위해 시장을 개방한 것이지만 우리는 상대적으로 전기요금이 낮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 전기요금은 일본에 비해 크게 낮다”며 “수익성을 추구하는 민간사업자가 시장에 진입하면 전력시장의 공공성이 훼손돼 오히려 전기요금이 인상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전력 판매 시장을 민간에 개방한 선진국의 경우 전기요금이 올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은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OECD와 비교하면 주택용은 60%, 산업용은 80% 수준으로 상당히 낮은 편”이라며 “이번 개편은 전기요금 인하가 목적이 아니라 에너지신산업 사업자들이 시장에 신속하게 진입할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가스공사가 94%를 독점하고 있는 가스 수입ㆍ도매 시장도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민간에 개방된다. 현재 가스공사 외에 SK E&S, 포스코, GS에너지 등이 가스를 수입해 자체 발전소와 제철소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가스 수입에도 경쟁 체제가 구축되면 전체적인 에너지 수입 비용이 낮아질 것으로 기대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가스공사는 대규모 물량 수입으로 세계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는데 민간기업과 경쟁하게 되면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며 “자칫 민간 개방이 해외 시장에서 ‘제살 깎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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