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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거리 아직 있지만 "실직 불안" 뒤숭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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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거리 아직 있지만 "실직 불안" 뒤숭숭

입력
2016.06.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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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대우조선·삼성중공업 가보니

2019년까지 정규직 3000명 감축

작업 중에는 실감 못 하다가

출퇴근길 구조조정 중단 현수막에

가슴 철렁하는 일상의 반복

노조원 85%가 파업 찬성 전운도

노조 없는 사내하청 7만5000명

당장 생존 위기에 내몰려 발 동동

조선업계의 구조조정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중공업 직원들이 14일 경남 거제시 장평동 삼성중공업 조선소로 출근하고 있다.
조선업계의 구조조정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중공업 직원들이 14일 경남 거제시 장평동 삼성중공업 조선소로 출근하고 있다.

“막막하죠. 동료들끼리 부산으로 가서 자영업을 해야겠다는 얘기를 종종 나눕니다.”

14일 대우조선해양 조선소가 위치한 경남 거제시 아주동 출근 인파 속에서 만난 박모(48)씨는 이렇게 답답함을 토로했다. 작업복 차림으로 출근 중이던 박씨는 “20년간 유니폼을 입을 때마다 자부심을 느꼈는데 지금은 인건비 잡아먹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아 서글프다”며 “몇 년 전부터 위기가 예상됐음에도 경영진이 무능력하게 대처했고 그 결과 노동자들이 고통 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선소 정문을 지나 야드(작업장)로 들어서는 길목에도 ‘일방적 구조조정 중단하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2019년까지 정규직 직원 1만5,000여명 중 3,000명을 감축하겠다는 사측의 발표에 직원들이 던지고 있는 외침이다. 대우조선 정규직과 사내하청 노동자 4만5,000여명은 매일 이 현수막을 보고 작업장으로 향한다. 한모(39)씨는 “작업 중에는 일거리가 많아 불황이니 실직이니 실감하지 못하다가도 출퇴근 길에 현수막을 보면 다시 불안함을 느끼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씨의 말처럼 막상 작업장은 활기가 가득해 구조조정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직원들은 서울 여의도 1.5배 크기의 작업장과 7개 도크를 꽉 채운 선박블록 사이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크레인을 이용해 3,000톤 무게의 선체를 이동시키고, 작업레일 근처를 쉼 없이 오가기도 했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올해 9개의 해양플랜트를 인도하고 다시 9개의 해양플랜트 건조작업을 이어가는 등 향후 2년 6개월 동안의 작업량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13일부터 이틀째 계속된 노동조합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엄혹한 거제의 현실을 각인시켰다. 노조는 구조조정 등을 통해 인건비 1조3,000억여원을 절감하겠다는 사측 자구계획안에 대응해 파업 여부를 결정지을 투표를 실시했고, 이날 오후 개표 결과 노조원 85%의 찬성을 얻었다. 곧바로 파업에 돌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든 파업 카드를 꺼내 들겠다는 의미여서 조선업 불황 직격탄을 맞은 거제에는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노조 관계자는 “사측과 채권단이 노조가 제안한 3자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에 나선다면 실제 파업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바탕 충돌은 불가피해 보였다.

파업권이 있는 정규직 노조원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노조가 없는 거제ㆍ통영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 7만5,000여명은 당장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었다. 대우조선 사내하청업체의 경우 지난해 말부터 올해 3월까지 16개 업체가 폐업해 3,40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향후 3만명이 작업장을 떠날 것이란 전망에 모두들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우조선 인근에 위치한 거제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들 역시 올해에만 1만명이 실직할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8일 문상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해고(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는 김모(41)씨는 “사전에 팀장에게 양해를 구했음에도 다음날 조회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해고 통보를 받을 정도로 무참하게 사람들이 잘려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승호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거통고 대책위) 위원장은 “지난해부터 불황을 핑계로 부당해고, 임금체불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어 올 4월 시민단체 등과 연대해 대책위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조에 참여하면 불이익을 받는 문화 탓에 하청노동자들이 위축돼있어 아직 조합의 형태를 갖추지는 못했다.

노조가 없는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소규모 집회가 전부였다. 이날도 거통고 대책위와 연대 중인 삼성중공업일반노조 소속 김경습(48)씨가 오전 6시부터 두 시간 동안 장평동 삼성중공업 조선소 앞에서 구조조정 반대 출근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김씨는 “삼성중공업의 경우 지난 2년간 정규직 직원 1,500명의 희망퇴직을 받았다”며 “정규직도 잘려나가는 판국에 하청노동자들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거통고 대책위 관계자 20여명 역시 이날 오후 5시부터 한 시간 동안 대우조선 앞에 모여 퇴근 투쟁을 벌였다.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는 거제 지역경제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주동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정지원(59ㆍ여)씨는 “2, 3년 전에는 하루 매출이 50만~60만원이었는데 요즘은 35만원 정도로 줄었고 앞으로는 이마저도 못 벌 수 있다고 생각하니 걱정”이라고 말했다. 호프집을 운영 중인 김한석(52)씨도 “최근 손님이 10% 정도 감소했는데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되거나 파업에 돌입하면 매출이 더욱 떨어질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거제=글ㆍ사진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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