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6월 14일
해리엇 비처 스토(Harriet Beecher Stowe)는 1852년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서 미국 남부 켄터키 주 한 농장의 선량하고 충직한 흑인 노예 톰과 가족 등 주변인들의 비극적 생애를 그렸다. 9년 뒤인 61년 미국 남북전쟁이 시작됐고, 링컨은 전쟁 중이던 63년 노예해방을 선언했다. 전쟁은 북군의 승리로 64년 끝났고, 이듬해 12월 수정헌법 13조로 미국의 흑인 노예제가 폐지됐다. 전쟁 후 링컨이 스토를 만나 “당신이 그 큰 전쟁을 일으킨 작은 부인이시군요”라고 했다는 건, 진위 여부를 떠나 그의 소설이 당시 미국 사회에 끼친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남부 흑인 노예들이 겪는 실상을 그의 소설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차별을 극복해야 하는 까닭은 차별의 대상이 ‘선량하고 충직’해서가 아니라 차별 자체가 불의이기 때문이라는 걸 미국 시민들이 말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또 100여 년의 시간이 지난 뒤부터였다. 1960년대의 인권 운동가들은 ‘엉클 톰’의 선량함과 순박함, 흠 없는 고결함을 공개적으로 지적하기 시작했다. 그들, 특히 흑인 인권운동 진영은 백인들의 선의를 기대하는 수동적 흑인들을 조롱과 안타까움을 담아 ‘엉클 톰’이라 불렀다.
스토는 1811년 오늘(6월 14일) 코네티컷 주 리치필드의 장로교 목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도 신학교를 나왔고, 신학자를 만나 결혼했다. 맹렬한 노예 찬성론자였던 아버지와 달리 흑인들의 처지를 동정했던 그는 1850년 의회가 ‘도망 노예법(도주를 돕는 이들에게도 벌금 등을 부과해 처벌하는 법률)’을 통과시키자 저 소설을 쓸 결심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나는 독실한 크리스천 여인이 그래야 하듯이, 이 불쌍하고 단순하고 의존적인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의무를 완수하려고 애써왔어요. 여러 해 동안 그들을 보살피고 가르치고 감독해왔고, 또 그들의 근심과 기쁨을 함께 나누어왔어요. 우리가 약간의 금전적 이익을 위해, 톰 같이 충직하고 성실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우리가 가르쳐온 그 모든 것으로부터 떼어놓아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람들 사이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겠어요.”
150년 전의 스토에게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저 혼자 버젓한, 반(反)차별의 ‘잠재적 아군’들이 너무 많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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