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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박근혜 정세균, 인연과 악연 사이

입력
2016.06.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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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국회 초선 동기 인연 두 사람

2005년 사학법 개정 놓고 충돌 악연

행정ㆍ입법 수장 소통해야 정치 살아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20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해 연설을 마친 뒤 정세균 국회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20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해 연설을 마친 뒤 정세균 국회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박근혜 대통령과 정세균 국회의장이 13일 20대 국회 개원식에서 각각 행정부 수장과 입법부 수장으로서 첫 대면을 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 중 국정운영의 성패, 나아가 안팎으로 중대 기로에 서 있는 대한민국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일단 출발은 괜찮아 보였다. 박 대통령은 이날 개원 연설을 통해 “우리 국민이 20대 국회에 바라는 것은 화합과 협치”라며 “국회와의 적극적인 소통과 협력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드리는 국정운영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운영의 동반자로서 국회를 존중하겠다고도 했다. 앞서 정 의장은 20대 국회 개원사에서 “실질적으로 국정의 한 축으로서 역할 하는 능동적 의회주의 구현”이란 국회상을 제시했다.

박 대통령이 개원 연설을 마친 뒤 국회의장실에서 국회의장단, 5부 요인, 여야 지도부 등과 가진 환담 자리에서도 국정협력, 국회와의 소통 등 다짐과 덕담이 오갔다. 이런 분위기가 유지된다면야 야당 출신 국회의장과 권력누수기에 접어든 대통령의 관계를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듯하다. 하지만 초심대로만 되지 않는 게 정치고, 현실정치 세계는 비정하다. 박 대통령의 불통과‘국회 탓’ 습관이 쉽게 달라질 리 없고, 대선이 다가 오는데 야당과 야당 출신 국회의장이 순진하게 국정 협력에만 머물지 않을 터이다.

인연과 악연 사이를 오간 두 사람의 과거도 행정부 수장과 입법부 수장의 향후 관계에 영향을 미칠 법하다. 우선 두 사람은 15대 국회 초선 동기다.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특보로 정계에 입문한 정 의장은 1996년 15대 총선 때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전북 무주ㆍ진안ㆍ장수 선거구에서 첫 배지를 달았다. 박 대통령은 2년 뒤인 1998년 재보선 때 대구 달성에서 처음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그렇게 의정활동을 시작한 두 사람은 국회 출입기자들이 선정하는 백봉신사상의 단골 수상자였다.‘미스터 스마일’별명을 가진 정 의장은 가장 신사적인 의원에게 수여하는 이 상 취지에 잘 맞아 2005년, 2006년 대상(공동 수상)을 포함 7차례나 수상자로 뽑혔다. 이어 박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의 깨끗한 승복이 계기가 돼 2010년까지 내리 네 번이나 대상을 받았다.

악연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말 사학법개정 때였다.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대표)이던 정 의장은 사학법개정안을 밀어붙여 통과시켰고,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국회 전면 보이콧, 장외투쟁으로 맞섰다. 사학법개정 찬성여론이 반대보다 훨씬 높았고(찬성 55%, 반대 35%) 민생현안과 예산안처리가 시급한 가운데 53일이나 장외투쟁을 벌였다. 보수정당에 어울리지 않게 서울 시청 앞에서 촛불집회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박 대통령을 향해 정 의장은 “127석이나 되는 책임 있는 정당이 국회를 볼모로 엉뚱한 주장을 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몰아 붙이며 TV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쟁점 현안에 같은 목소리를 낸 적도 있다. 정권이 바뀌어 이명박 정부 시절, 여당 내 야당 박근혜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결사 반대했고, 종편 미디어법 개정에도 부정적 입장을 견지했다. 열린우리당 대표 재수 중이던 정 의장의 입장과 다를 게 없었다. 정 의장은 미디어법개정에 반대해 의원직 반납과 함께 단식농성 투쟁에 돌입했다. 그 언저리에 박근혜와 정세균의 공조설이 나돌기도 했다.

인연과 악연 속에 산전수전 다 겪은 두 사람이다. 상대의 의중을 읽고, 역지사지하면 소통과 협력을 못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아쉬운 사람은 박 대통령이다. 지금 여소야대의 핀치에 몰리게 된 것은 여당 출신 국회의장과 여당 원내대표 등을 포함한 국회와의 소통 실패가 큰 요인이었다. 박 대통령은 정 의장의 지역구(서울 종로)주민이기도 하다. 행정부 수장과 입법부 수장 간에 말이 안 통하면 지역주민과 지역구의원 관계로라도 만나 말 문을 터라. 그래야 정치가 된다.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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