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이 나오고 금수저와 흙수저가 등장한다. 여기에 더해지는 메시지는 정의실현. 뻔하고도 뻔하다.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모은 ‘베테랑’부터 ‘소수의견’ ‘내부자들’ 등 최근 한국영화들이 애용하는 흥행 공식이 그대로 적용된다.
뻔한 이야기를 내장한 채 16일 개봉하는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특별수사)는 코믹 발랄 수사극에 방점을 찍는다. 경찰이나 변호사가 주인공인 여느 수사물과 달리 변호사 사무실의 사건브로커 최필재(김명민)가 사건을 풀어가는 핵심인물이다. 코미디의 형질이 물씬 느껴지는 대목이다.
전직 경찰이었던 필재는 자신의 옛 직업을 십분 활용해 사건 현장이나 경찰서에 ‘난입’해 사건을 직접 물어온다. 독보적이라 할 그의 업무 수행에 어마어마한 수임료가 따라온다. 월급을 주고 그를 고용한 검사출신 변호사 김판수(성동일)는 어느덧 고용자가 아닌, 필재를 ‘모시는’ 사람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사건을 뒤쫓으며 ‘돈 맛’을 알아가던 두 사람은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받고 삶의 기로에 선다. 억울하게 살인누명을 썼다는 사형수 권순태(김상호)가 보낸 구구절절한 사연 앞에 필재의 마음은 크게 흔들린다. 사건을 파헤칠 것인가 아니면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사건을 묻어버릴 것인가 고뇌한다.
영화는 대기업 대해제철의 며느리 살인사건을 중심에 두고 소시민 택시기사 순태와 그의 딸 동현의 억울한 사연에 귀 기울이는 필재의 모습을 따라간다. 이어 관객들의 예측에 부합한다는 듯 검찰과 경찰, 대기업 사이의 유착관계가 드러난다.
“커피에 침 뱉었지?” “돈이면 안 되는 게 있냐?” 등 영화 초반부터 대놓고 속물근성을 드러내는 김명민의 코믹 연기에 관객은 곧 무장해제된다. 하지만 웃음에 방심하지 말길. 김명민의 몰아붙이기 식 코믹 연기는 영화의 반전을 위해 준비한 감독의 노림수다.
2002년 영남제분 여대생 살인사건과 2000년 전북 익산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등을 모티브로 한 영화의 본론에 접어들면 관객은 서늘한 갑의 횡포와 마주하게 된다. 연속되는 코믹한 설정이 실제 살인 사건을 연상시키는 장면들과 겹치면서 소름이 관객 어깨를 감돈다.
뻔한 공식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관객들의 소름이 돋도록 하는 데는 배우들의 몫이 컸다. 숨막히는 긴장감 속에서도 할리우드식 농담을 주고 받는 김명민과 성동일의 연기 앙상블이 이 영화의 힘이다. 두 사람과 사건 현장을 다니며 ‘남남 케미’를 보여주는 형사 향주(박수영)는 단연 신스틸러다.
영화 속 ‘악의 축’의 맹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돈과 권력을 손에 쥐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대해제철 사모님(김영애)과 그의 수하 박소장(김뢰하)는 살인, 살인교사 등으로 관객들의 피를 끓어오르게 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갑에 대한 정의실현은 백 번 언급해도 지나치지 않는 주제가 된다. ‘특별수사’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이유다. 상영시간 120분, 15세 관람가.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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