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방 도시를 오가며 버스 안에서 틀어주는 두 편의 영화를 눈이 가는 대로 대충 보았다. 둘 다 가상현실을 다룬 영화였고, 선과 악이 모두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결말이 비슷했다. 사실 나는 영화에 흥미를 잃은 지 꽤 되었다. 선정성과 폭력성을 높이는 영화계의 상업성에 진저리를 낸 뒤로는, 겨우 몇 편의 영화를 봤을 뿐이다. 영화판에서는 너나없이 ‘피’와 ‘관능’의 극점을 찍는 장면이 영화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느낀 뒤부터 나는 공짜 영화도 보러 가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다 두어 달 전 본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는 잔잔한 감동이 오래가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한때는 촉망 받는 피아니스트였으나 지금은 피아노 교사로 살아가는 세이모어는 얼핏 보면 실패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음악과 더불어 잘 살고 있었다. 그는 깊이 사유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명언을 사이사이 쏟아내기도 했는데, 그의 고결한 정신세계를 엿보게 했다. 그 중 하나는, “재능이 사람의 본질을 결정한다”는 말이었다. 이때의 재능이란, 탄생과 함께 거저 얻었으나 멈춰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한히 노력해 어떤 상태에 도달했거나, 도달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 있는 의미의 재능을 말한다. 부디 내게도 재능이라는 것이 있고, 포물선의 상향선을 그리며 쭉쭉 뻗어갔으면 좋겠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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