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연계 가능성에 초점”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의 한 게이 클럽에서 12일 오전 2시쯤(현지시간) 인질극과 함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최소한 50명이 숨지고 53명 이상이 다쳤다. 특히 총격사건 용의자로 확인된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이 범행 직전 911에 전화를 걸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대한 충성 서약을 한 것으로 알려져 미국 사회에 큰 충격에 빠졌다. 2001년 9ㆍ11 사태 이후 미국에서 터진 최대 테러사건으로 인해 ‘테러예방’이 대선 쟁점으로 급부상할 전망이다.
용의자의 신원은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오마르 마틴(29)으로 확인됐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민 온 부모 사이에서 1986년 뉴욕에서 출생한 용의자는 사건발생 장소에서 두시간가량 떨어진 플로리다 주 포트 세인트 루시에서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결혼한 그는 특별한 전과기록이 없었으나 연방수사국(FBI)으로부터 IS 동조자로 의심받아 수사선상에 올라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FBI와 플로리다 주 경찰은 일단 이번 사건을 국제적 조직이 개입하지 않은 채 용의자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 총기난사를 가한 ‘국내 테러 행위’로 규정지었으나 용의자가 순수하게 단독으로 범행을 저지른 자생적 테러인지, 아니면 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연계돼있는지는 분명치 않은 상태이다.
수사당국은 용의자가 평소 IS에 동조하는 경향을 보여온데다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해온 점에 주목, IS와의 연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진행 중이다. FBI 특수조사팀장인 론 호퍼는 “우리는 용의자가 지하드(이슬람 성전) 사상에 경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며 “모든 각도에서 범행 동기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올랜도 경찰청장인 존 미나는 기자회견에서 “잘 조직되고 준비된 범행으로 보인다”며 “용의자는 공격형 무기와 소총을 들고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용의자는 총격 직전 911에 전화해 자신이 IS에 충성을 맹세했다고 미국 정부 당국자들이 밝혔다고 미국 언론이 전했다. 용의자는 전화통화에서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사건을 언급했다고 이 당국자들은 전했다. 보스턴 마라톤 테러사건 공범의 한명인 타메를란 차르나예프도 용의자와 마찬가지로 FBI의 테러 용의선상에 올라있었다.
미국의 한 당국자는 이날 국토안보부가 행정부에 회람한 보고서를 거론하며 “용의자가 IS에 충성서약을 했고 나이트클럽에서 다른 언어로 기도하는 것을 들었다는 지역 수사당국의 보고내용이 언급돼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샌버너디노 총격사건의 주범인 사이드 파룩의 부인인 타시핀 말리크(27)도 범행 전에 페이스북에서 IS 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에게 충성을 서약한 바 있다.
IS와 연계된 매체인 아마크통신은 이날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1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올랜도 게이 나이트클럽 공격은 IS 전사가 저지른 것”이라고만 짤막하게 밝혔다. 그러나 용의자가 IS와 직접 연계되거나 IS가 범행을 사전 인지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WP 등 미국 언론이 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사건을 “테러 행위이자 증오 행위”라고 규정한 뒤 “미국인으로서 우리는 슬픔과 분노, 우리 국민을 지키자는 결의로 함께 뭉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마틴이 사건을 저지른 동기가 IS식 동성애 혐오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마틴의 아버지 세디크 마틴은 이날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마이애미의 다운타운데 있었다. 사람들이 음악을 연주했다. 그 자리에서 아들은 두 남자가 키스하는 것을 보고 뚜껑이 열렸다”고 밝혔다.
중동문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소수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결속력을 도모하는 IS의 행태는 이미 여러 번 알려져 왔다.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에 대해 IS는 공개 처형은 물론, 높은 건물 지붕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하는 등의 행위를 거리낌없이 저질러 왔다. 전문가들은 동성애를 죄악시하면서도 동성애자를 포용하자는 점을 강조해 온 주류 이슬람교와 달리 IS는 이슬람 경전 쿠란의 구절을 제멋대로 왜곡해 성소수자를 살해하기 위한 구실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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