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엽(22)이 3홀을 뒤진 가운데 주최 측이 응원 해방구로 지정한 15번홀(파4)에 들어서자 갤러리들은 시끌벅적 해졌다. 골프대회에선 조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마음껏 소리 지를 수 있는 갤러리 스탠드에 가득 모인 관중들은 이상협을 파도타기로 응원했고 힘을 얻은 그의 티샷은 대역전 우승을 향해 힘차게 허공을 갈랐다.
이상엽은 12일 경기 용인의 88컨트리클럽 나라사랑코스(파72ㆍ6,972야드)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데상트코리아 먼싱웨어 매치 플레이(총상금 8억원ㆍ우승상금 1억6,000만원) 결승전에서 황인춘(42ㆍ후쿠즈미)을 1타 차로 따돌리고 극적인 투어 첫 우승을 맛봤다. 만 21세 5개월인 이상엽은 예선을 거쳐 우승하는 진기록과 함께 대회 사상 최연소 우승자로 우뚝 섰다.
이상엽은 2014년 KPGA 챌린지 투어 상금왕 자격으로 투어 카드를 획득한 실력파다. 64강전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최진호(32ㆍ현대제철)를 꺾었던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 프로 2년차인 그가 맞상대한 결승 파트너는 프로 15년차 황인춘. 이상엽이 이날 오전 3경기에서 송영한과 18번홀(파4)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극적으로 승리하며 결승에 합류한 반면 6년만의 우승을 노린 황인춘은 셋째 날 조별리그 완승에 이어 3경기에서도 주흥철에게 2홀을 남기고 4홀 차로 앞서 전체 1위(3승 승점 10)로 여유 있게 결승에 안착했다.
결승전 전반을 2홀씩 주고받으며 동률로 마친 두 선수의 희비는 후반 들어 극명하게 엇갈렸다. 황인춘이 극도의 피로 속에서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10번홀(파4)부터 13번홀(파3)을 연속으로 가져가며 단숨에 4홀을 앞서 승기를 잡았다. 그러나 황인춘은 공교롭게 응원 해방구로 마련된 15번홀 이후 실수를 연발했다. 이상엽에게 14~17번홀을 연속으로 내주고 동타를 허용했다. 2홀을 앞섰던 황인춘으로선 16번홀(파3)에서 우승을 확정 지을 수 있는 짧은 거리 버디 퍼팅을 놓치고 파 퍼트까지 연달아 홀 컵을 비껴간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승부는 운명의 18번홀로 넘어갔고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황인춘이 또 다시 보기를 범하는 사이 이상엽이 파 퍼트에 성공하며 기나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번 대회는 변경된 규칙에 따라 체력이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조별리그 이틀간 36홀을 도는 살인 일정은 베테랑들에게 불리했다. 실제 결승 라운드 내내 힘들어하던 황인춘의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방증하듯 이상엽보다 정확히 스무 살이 많은 황인춘은 후반으로 갈수록 실수를 거듭하며 스스로 무너졌다.
이상엽은 이번 대회 32명에게 주어지는 예선 면제 대상이 아니었다. 추가로 32명을 뽑는 예선전에는 120명이 참가했고 불꽃 경쟁 속에 24위(32명 선발)로 통과한 끝에 투어 첫 우승을 만끽했다. 마음을 편하게 먹었던 게 결정적이었다. 외아들인 이상엽을 애지중지 키운 아버지는 결승전을 앞두고 “목표는 16강이었다”며 “목표를 이뤄 편안하게 플레이를 했는데 결승에 나갔다”고 설명했다.
우승 상금 1억6,000만원을 거머쥔 이상엽 역시 “중반 이후 4홀이 뒤져 반포기 상태로 편안하게 하자고 했던 게 역전을 불렀던 것 같다”면서 “황 프로가 16번홀에서 실수하면서 그때부터 잘하면 연장으로 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동안 드라이버가 안 돼 마음 고생이 심했는데 같이 고생해준 부모님에게 감사하다”고 기뻐했다. 용인=정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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