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1시14분. 지하철 광화문 역 4번 출구 통로엔 94명이 한 줄로 앉아 있었다. 보이그룹 엑소의 3집 ‘이그잭트’ (‘EX’ACT’)를 사기 위해 대형 음반 매장인 교보핫트랙스 광화문 점에 몰린 팬들이다. 오후 3시 이후 엑소의 새 앨범이 매장에 풀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 시라도 빨리 CD를 손에 쥐고 싶은 팬들이 몰려 대기 줄까지 만들어진 것이다. 오후 2시30분이 지나자 대기자는 250명을 넘었고, 대기줄은 100m 넘게 이어졌다. CD에서 음원 소비 위주로 음악시장이 재편된 지 오래된 상황에서, 팬덤이 강한 엑소가 새 앨범을 내 10~20대를 다시 음반 매장으로 불러 모았다.
250여명 음반 구입 100m 대기줄
‘엑소 마니아’의 세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평범한 ‘아재’에게도 엑소 컴백으로 불똥이 튀었다. 개인 사업을 한다는 최진형(가명·42)씨는 엑소 CD를 사 달라는 잠실에 사는 중2 조카의 간곡한 부탁에 쉬는 날 음반 매장을 찾았다가 두 시간 넘게 줄을 서는 곤욕을 치렀다. 최씨에겐 “CD를 사려고 이렇게 줄을 서는 상황이 어리둥절하고 신기할” 뿐이다. 오후 3시8분에 “판매 시작합니다”란 음반 매장의 말이 떨어지자 맨 바닥에 앉아 있던 대기자들은 일제히 “와”라는 소리를 지르며 일어섰다. 축제가 따로 없다. 음반매장 측은 지하철 역과 매장 입구 사이 공간에 24시간 엑소 CD 판매 전용 두 대의 판매대를 따로 설치해 손님을 맞았다. ‘가왕’ 조용필도 보이그룹 빅뱅의 새 앨범 발매 때도 하지 않던, “엑소 음반 발매라서 하는” 특별한 일이라고 관계자는 전했다. 오전 9시30분에 매장을 찾아 줄 맨 앞에 선 지승현(가명·19)씨는 5시간 38분을 기다린 끝에 엑소의 CD를 처음 손에 쥐었다.
음원사이트에서 손쉽게 노래를 들을 수 있지만, 이들이 굳이 CD를 고집한 이유는 “소장”을 위해서다. 집에 CD를 들을 수 있는 오디오나 CD플레이어가 없는 데도 이날 매장을 찾아 CD를 산 팬들도 적지 않았다. 대학생 이모씨(19)는 “고시원에서 살아 따로 CD를 틀 오디오나 CD플레이어가 없지만 앨범 재킷 사진 등을 갖고 싶어 소장용으로 CD를 사러 왔다”고 말했다. “연말 각종 시상식에서 엑소의 높은 순위를 위해”(이승현·20) CD를 산다는 ‘열혈팬’도 있었다. CD판매량이 연말 여러 가요 시상식에서 수상 선정 기준에 영향을 끼쳐 사명감을 갖고 CD를 산 유형이다.
엑소는 공식 팬클럽 회원수만 369만명(국내 가수 중 최다)이 넘는 만큼 CD 판매량에서 막강한 화력을 발휘했다. 10일 광화문교보핫트랙스 측에 따르면 전날 매장에서 팔린 엑소 3집 CD는 5,000장이 넘는다. 엑소의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엑소 3집 CD 선주문량은 66만 180장(한국어 음반 44만2,890장, 중국어 음반 21만7,290장)이다. 엑소 앨범 사상 최다 수치다. 이로 인해 엑소가 3집 CD판매량에서 어떤 신기록을 세울 지에 대해 음악관계자들의 관심이 쏠린다. 앞서 엑소가 2015년 3월 낸 2집은 국내 유통된 한국어와 중국어 앨범이 같은 해 76만 여 장(단일 앨범, 가온차트 기준)이 팔렸다.
“신곡 ‘몬스터’는 글로벌화된 게 특징” 평
엑소는 1년 3개월 여 만에 3집을 내면서 세력 확장을 위해 총공세에 나선 모습이다. 엑소는 경쾌한 댄스곡인 ‘럭키 원’과 어둡고 비트가 강렬한 ‘몬스터’를 더블 타이틀곡으로 내세웠다. 엑소가 데뷔 후 더블 타이틀곡으로 활동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룹 최대 히트곡인 ‘으르렁’(2013)처럼 리드미컬한 음악을 좋아했던 팬들과 데뷔곡 ‘마마’(2012) 때 보여준 그룹의 어두움을 좋아하는 초기 팬들을 동시에 사로 잡겠다는 의도다.
두 곡 중 대중적인 반응이 더 좋은 곡은 ‘몬스터’다. 9~10일 이틀째 멜론 등 8개 음원 사이트 1위를 휩쓸고 있다. 보이그룹 샤이니의 ‘뷰’ 등을 만든 영국 작곡가팀 런던보이즈와 SM 간판 국내 작곡가 켄지가 함께 만든 곡이다. ‘으르렁’ 같은 대중성은 떨어지지만, 음악적 새로움이 흥미롭다는 평이 비교적 많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몬스터’는 SM의 탈 한국화를 잘 보여준 음악”이라며 “‘마마’와 비교해 해외에서 유행하는 음악적 특징들이 담겨 더 글로벌화된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대화 평론가는 “귀에 잘 들리는 세련된 사운드”를 장점으로 꼽았다. 이와 달리 박준우 평론가는 “타이틀곡인 ‘럭키 원’과 ‘몬스터’는 곡의 완성도가 무난했다”며 “수록곡인 ‘아트피셜 러브’와 ‘클라우드 나인’이 신선했다”는 의견을 냈다.
글·사진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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