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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반세기 후 다시 가보는 하루키의 그곳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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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반세기 후 다시 가보는 하루키의 그곳들

입력
2016.06.1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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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중정이 보이는 포치에서 한가롭게 독서 중인 무라카미 하루키. ⓒHirotsugu Okamura
라오스의 중정이 보이는 포치에서 한가롭게 독서 중인 무라카미 하루키. ⓒHirotsugu Okamura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발행·264쪽·1만4,000원

소설이나 영화에만 속편이 있는 게 아니다. 에세이에도 속편이 있다. 세계적 인기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7)가 10여 년 만에 펴낸 여행기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가 그런 책이다. 1995년부터 2015년까지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쓴 글들을 모은 책이지만, 절반 가까운 분량이 옛 체류지들의 재방문 기록이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여행편은 ‘먼 북소리’의, 보스턴 여행기는 ‘이윽고 슬픈 외국어’의 무려 사반세기 후 속편. 그가 “이십 년쯤은 정말로 눈 깜짝할 새다” 같은 문장을 반복할 때마다 하루키와 함께 나이 들어온 독자들은 여흥과 애수를 자극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마라톤의 동의어와도 같은 보스턴의 “세금징수원처럼 소리 없이, 그러면서도 정확하게 찾아오는” 겨울과 찰스 강변 달리기로 시작한 여행기는 온천과 이끼의 나라 아이슬란드, 미국 오리건주와 메인주에 있는 동명의 두 도시 포틀랜드, 거대한 메콩강처럼 경건한 신심이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라오스 등을 거쳐 나쓰메 소세키가 거처했던 일본 구마모토에서 여정을 끝맺는다. 사람들 사이의 에피소드가 소설적으로 돋보이는 에세이가 있는가 하면 여행 블로거 스타일로 깨알 같은 맛집, 숙박 정보를 주는 글도 있다. 미식의 신세계로 떠오른 두 곳의 포틀랜드를 여행한 후 쓴 글들이 특히 미각을 자극한다. “아, 즐거운 식사란 이런 거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식당들을 두루 훑고 쓴 글들이다.

북유럽을 모티프로 한 소설들을 많이 써온 작가답게 북유럽 여행기가 꽤 된다. 핀란드를 배경으로 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하루키는 모두 상상으로 썼다. 핀란드를 여행한 것은 소설을 다 쓴 후였다. “마치 나 자신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더듬어가듯이” 뒤늦게 여행하면서 흥미로웠다고 한다. 핀란드 영화감독 카우리스매키 형제가 ‘차가운 서비스와 따뜻한 맥주’를 경영 방침으로 운영하는 바에 갔다가 함흥차사인 주인 때문에 ‘뜨거운 맥주’도 못 마신 채 허탕치고 돌아오긴 했으나, 그의 말마따나 예정대로 진행되면 여행이 아니다.

꾸준히 여행기와 해외체류기를 써온 터라 “한동안 여행기는 접어도 되려나” 싶은 마음에 별로 쓰지 않았다는 하루키는 책을 묶으며 “다른 여행에 대한 글도 써둘걸 그랬다고 은근히 후회가 되었다”고 한다. 라오스 같은 곳에 왜 가냐는 투로 어느 베트남 사람이 물었다는 질문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에 그 자신 말문이 막혔지만, 여행 끝에 이르면 다른 곳이 아닌 바로 그곳에만 있는 것을 기필코 발견해내고 마는 것이 여행의 미덕이자 마력이기 때문이다.

루앙프라방의 사원 어느 곳에나 그려져 있는 그림들에 대해 길 가는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정확하고 동일한 설명을 해준다는 사실에 하루키는 감동받는다. “그런 식으로 저장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지연으로 확고하게 묶여 있다. ‘종교’라는 것을 정의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고유한 ‘이야기성’이 세계 인식의 틀로 기능하게 하는 것도 종교에 주어진 하나의 기본 역할이라 할 수 있으리라.”

일본항공 기내지나 잡지 등에 기고한 여행기들이라 작가 자신의 개성보다는 정보 제공에 더 치중한 인상이다. 소설가보다 에세이스트로서의 기량이 더 뛰어나다고 여겨왔던 독자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누구의 기분도 상하지 않게 하려는 하루키 특유의 태도-유머와 능청-가 전 세계 인구를 독자의 반경 안에 포함시켜야 하는 지구적 차원의 인기 때문에 다소 정치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아니, 근본적으로, 여행이란 것 자체가 젊음과 더 친연성을 갖는 장르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작가는 이런 비판에 능청을 부리며 책 속의 다음 문장과 같이 답할 테지만. “뭐, 아무렴 어떠랴. 그것이 인생인데(세 라 비).”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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