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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길과 내리막의 차이... 마음의 눈으로 통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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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길과 내리막의 차이... 마음의 눈으로 통찰한다

입력
2016.06.10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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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아사는 시각장애인들의 일화를 통해 신체를 다르게 사용해 세상을 새롭게 보는 '의미'에 관해 소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이토 아사는 시각장애인들의 일화를 통해 신체를 다르게 사용해 세상을 새롭게 보는 '의미'에 관해 소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이토 아사 지음ㆍ박상곤 옮김

에쎄 발행ㆍ216쪽ㆍ1만3,000원

눈 앞이 캄캄해진다는 건 꽤 당혹스러운 일이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중에서도 시각은 우리가 외부에서 얻는 정보의 80~90%를 차지한다니 그럴 법도 하다. 본다는 건 확실히 절박한 행위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는 시각장애인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통해 ‘본다’는 것의 의미를 돌아보는 책이다. 얼핏 복지서, 의학서에서 어울릴 법한 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푼 저자는 일본의 미학 박사인 이토 아사. 어릴 때부터 모충 등 작은 생물을 키우며 관찰일기 쓰기를 좋아하고, 고교 수업시간에도 생물자료집을 파고들었던 그는 생물학자를 꿈꿨다. 늘 “나와 다른 신체를 가진 존재”를 이해하고 공존하는 방식에 관심이 깊었다. 대학에서 접한 생물학이 기대와 달리 큰 틀에서 내가 아닌 다른 생물을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세분돼 있다는 생각에 3학년 때 문과로 전과해 미학과 현대미술을 전공했다. 그는 “상상력을 발휘해, 우리가 눈에 얼마나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지, 신체의 가능성 중 얼마나 극히 일부만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세계’에 몰두했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들이 대부분 미수에 그친 이 시대엔 다소 과분한 숙제처럼 보이지만, 그는 공간, 감각, 운동, 언어, 유머라는 큰 주제들을 통과하며 조근조근 이야기를 풀어간다. 평소 자주 대화를 나눈 6명의 인터뷰가 토대가 된 만큼 이론을 동반한 체계적인 글은 아니다. 어떤 대목에서는 갸우뚱할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사소하되 꽤 설득력 있는 발견과 통찰이 군데군데 번뜩인다.

눈이 보이는 사람은 2차원으로만 인식하는 거의 대부분의 풍경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3차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대목 같은 경우다. 저자가 어릴 때 시력이 저하된 기노시타 미치노리와 함께 길을 걷던 중 문득 포착한 사실이다. 자신은 늘 굽은 길로만 생각했던 길을 그가 “내리막”으로 표현했던 것이 단서였다. “눈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가 눈이 보이는 사람의 생각을 가로막기도 한다. 길에서 우리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자동적으로 운반되는 존재, 다시 말해 ‘통행인’일 뿐이다. 그러나 마치 스키를 타는 사람같이, 넓은 공간 위에 자신의 선을 그려나간 기노시타씨의 이미지는 훨씬 더 열려 있다고 하겠다.(…)나는 기노시타씨와 함께 똑같은 언덕을 내려오면서도, 그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걷고 있었던 것이다.”

흔들림이나 진동을 발바닥으로 느끼면서 서핑을 즐기는 이, 눈은 보이지 않지만 앞자리 선수의 움직임을 온 몸으로 지각하는 2인용 자전거 경기 선수, 타인이 읽어주는 여러 감상평을 통해 미술을 즐기는 모임, 번번이 원하지 않는 맛의 스파게티 소스를 사게 되고도 식품회사의 불친절함에 분개하기보다는 ‘오늘의 운세’ 뽑기에서 운이 나빴던 것쯤으로 여기는 유머를 발휘하는 이 등의 일화가 쏟아진다.

시종일관 “상상 속에서만이라도 다른 이의 신체가 돼 세상을 지각하고 손과 발을 움직여보고 싶었다”는 저자는 “각자 다른 너와 나의 신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이 책을 활용해 주길 바란다”는 말로 책을 맺는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만이라도 타인의 신체로 세상을 지각해 본 일이 있던가. 혹은 누군가의 세계를 상상하고 납득하기 위해 이렇게 정성껏 번뇌해본 일이 있었던가 하고 돌아보게 된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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