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
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 지음ㆍ김영 옮김
리수 발행ㆍ352쪽ㆍ1만9,800원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칼 세이건의 첫 부인이었던 린 마굴리스가 아들 도리언 세이건과 함께 쓴 대중과학서다. 린 마굴리스는 생물학계의 주류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신다윈주의와는 다른 학설을 펼쳐온 생물학계의 이단아였다.‘공생자 행성’ 등의 책과 1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 위대한 여성과학자다. 1966년 이래 줄기차게 세포 내 공생설(endosymbiosis)을 주장하면서 기존 학계의 외면을 받았지만 DNA 염기서열 분석 방법이 일반화되면서 그의 주장이 옳았음이 입증되자 오히려 큰 명성을 쌓았다. 세포 내 공생설이란 원핵 세포가 다른 세포의 내부에 들어가 공생하다가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chloroplast)와 같은 세포 소기관으로 진화했다고 보는 이론이다.
그는 영국 대기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이 주창한 가이아(Gaia) 가설의 지지자로 가설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가이아 이론이란 “지구가 단순히 기체에 둘러싸인 암석덩이로 생명체를 지탱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해 나가는 하나의 생명체이자 유기체”라는 주장이다. 린 마굴리스의 견해도 이와 유사하다.
“광합성은 생명이 탄생하고 나서 얼마 후 미생물에서 진화했다. 미생물부터 지구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유기체들은 공기와 물을 이용하거나 다른 유기체를 이용하여 자기 증식을 계속해왔다. 지역적인 생태가 전 지구적인 생태가 된다. 당연한 추론으로 생물이 지구 표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 표면이 곧 생물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생명은 지구 표면 그 자체이며 지구는 단순히 생물들이 살고 있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은 진핵 세포의 기원, 세포 공생설, 가이아 가설 등 세 가지 이론 축을 바탕으로 원시지구에서 어떻게 박테리아 형태의 생명이 기원하여 원생생물, 동물, 균류, 식물로 진화했는지를 기술하는데 생물조직화의 진화가 일목요연하게 제시된다. “결국 세균이 오늘날과 같은 지구 환경을 만든 것이다. 큰 생물은 모두 자신의 세포 안에 미토콘드리아를 가지고 있어 산소가 공기 중에 축적되기 전에 지구에서 살았던 세균의 살아 있는 후손인 셈이다. 지구의 생명은 상호 의존적인 존재가 프랙털을 이룬 네트워크 즉 홀로키다.” 이 세 문장에 이 책의 핵심이 요약되어 있다.
이 책은 우리가 그 동안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박테리아나 균류에 대한 자세하고 깊은 생물학적 지식으로 풍부하다. 과학의 언어와 문학적 표현이 잘 어우러진 문장은 저자들의 철학적 고민과 사상적 깊이를 전달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동시에 이 책은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우선 세포보다 작은 바이러스를 화학적 ‘좀비’에 불과할 뿐 스스로 물질대사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명에서 배제하는데, 정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생명을 보는 과거의 비과학적인 태도로서 비판 받아온 관점으로는 물활론과 기계론, 목적론 등이 있다. 저자들은 19세기에 다윈의 진화론에 비판적이었던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를 불러들여 ‘생명의 합목적성’을 언급하는데 뜬금없을 뿐 아니라 황당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형열 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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