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왜 그리 궁상스럽게 사느냐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생활 속에 실천하는 환경 사랑 방식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산다. 우선 내 차를 몰지 않는다. 미국에 있을 때와 개업 초기 몇 달을 제외하고는 내 차 없이 산다. 이렇게 저렇게 남의 차 타고 다니는 얌체 짓을 하고 있는데 내가 모셔야 할 선배나 선생님이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탈 때는 좀 죄송스럽긴 하지만, 그냥 눈 딱 감아 버리고 신세를 진다. 그러다 보면 예기치 못한 좋은 말씀은 덤이다. 자동차를 몰지 않으면 지하철 버스 택시 같은 것을 이용하게 되니 운동도 되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보게 되어 일석이조다.
두 번째는 음식과 관련된 생활 원칙들이다. 우선 우리 집 냉장고에서 어쨌건 음식 썩어 나가는 것 없기가 목표다. 밥알 한 톨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고로운 줄 아느냐고 강조하셨던 돌아가신 아버님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젊어서 가난하게 살았던 기억 때문에 시어머님은 박스로 나물 같은 것을 사 오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저렇게 요리를 응용해서 어떡하든 음식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내 요리 목표 중 하나였다. 덕분에 ‘냉장고를 부탁해’의 셰프들만큼은 아니지만 있는 재료 살리기가 내 특기가 되었다. 내가 장을 볼 때면 가능한 우리나라 가까운 곳에서 나는 제철음식을 사려고 노력한다. 때론 외국에서 수입한 값싼 과일이나 고기 같은 것을 살 때도 있지만, 사실 마음이 완전히 편하지는 않다. 보관하기 위해 뿌린 농약, 운반하기 위해 태운 석유, 비닐하우스에 드는 연료 같은 것을 생각하면 다 지구에 죄짓는 것 같다.
점심은 사 먹지 않고 도시락 싸가는 것도 수십 년 습관이 되었다. 내가 요리한 정갈한 음식 먹는 재미도 있지만,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먹는 것보다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이 더 많아 마음이 불편한 탓이 더 크다. 때로는 비닐 같은 것을 가지고 가서 버려질 만한 빵이나 음식을 싸오거나 싸달라고 할 때도 있다. 뷔페를 가면 웬만하면 내가 먹은 접시를 다시 들고 나간다. 우리 식탁에 쌓이는 그릇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그릇 하나 씻을 때 쓰는 세제와 물의 양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잘 나간다는 유명 셰프의 퓨전 요리 같은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이유는, 그 음식이 맛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릇 치레가 너무 요란하기 때문이다. 큰 냄비만 한 무거운 접시에 밤톨 같은 음식과 붓으로 그린 소스를 볼 때면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그릇 씻는 사람과 그릇 운반하는 이들의 노고에 미안해진다.
옷 구매도 나름대로 원칙이 있다. 홈쇼핑 업체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홈쇼핑에서 물건을 산적이 한 번도 없다. 뭐든 직접 만지고 봐야 한다는 불안감도 있지만, 쇼핑하는 수고로움이 없으면 자칫 쇼핑 중독이 될 것 같아 의도적으로 계좌를 트지 않는다. 옷을 살 때도 내 손을 떠날 옷만큼만 산다. 그래야 옷장이 넘치지 않기 때문이다. 옷이나 가방 등은 특히 고가 명품을 직접 산 적이 한 번도 없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브랜드에 돈을 쓰는 것보다는 소액이지만, 어딘가에 기부하는 것이 훨씬 더 나를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때로는 상대방이 혹시 기분 나쁠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상담할 때 자주 이면지를 쓴다. 글 쓰고 강의하는 사람이라 항상 종이에 무언가 프린트된 것이 많아 따로 챠트지를 사는 대신이다. 책 욕심을 버리지 못해 그동안 도서관 등에 갖다 준 책이 거짓말 좀 보태 트럭으로 하나인데, 아직도 남아 있는 수 천 권의 책들이 나를 죄스럽게 만든다. 진짜 부끄러운 것은 그동안 내가 쓴 책들인데, 모르긴 몰라도 아직 창고에 쌓인 책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 또한 환경오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요즘 미세먼지와 환경오염물질에 대한 각성과 대책이 그 어느때 보다 활발한 것 같다. 한데 들여다보면, 근본적 대책보다는 마스크를 쓰고, 손을 닦고, 창문을 닫고, 외부활동을 자제하라는 식의 “당신 한 몸만 잘 지켜라”는 메시지뿐이다. 바깥에서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무능하고 부도덕한 정부가 제대로 생각도, 기능도 하지 못하고 있다면 시민들이라도 나서서 오염된 환경을 해결하도록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정부를 뽑고, 방기하고, 잘 잊어버려 준 우리 모두의 책임이 더 큰 게 아닌가 싶다.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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