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촹커의 천국’ 선전 화창베이 전자상가
곳곳에 창업센터… 화웨이 등 스타트업 산실
촹커와 제조업체 간 연계가 혁신 동력
혁신적 아이디어, 곧바로 제품으로
지난 5일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深?)시 화창베이(華强北)의 전자상가. 유명한 상업지구는 온통 젊은이들로 북적였고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다소 소란스럽긴 했지만 여기저기에서 격의 없는 아이디어 토론과 시제품 평가, 외지인과의 주문 계약 체결 등으로 활기가 넘쳤다.
특이하게 ‘부품’만 취급하는 상가도 눈에 띄었다. 앳된 20대 청년들이 손톱만한 크기의 핸드폰ㆍ노트북 부품들을 직접 조립하거나 분해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산자이(山寨ㆍ모조품)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펑진산(鵬金山)전자상가에서 5년 전 고교 동창과 창업했다는 후진제(胡近杰ㆍ27)씨는 “기존 제품에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서 주문한 시제품을 뜯어본 뒤 재조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3일만에 아이디어가 제품으로 변하는 혁신센터
화창베이에서 가장 유명한 전자상가 중 한 곳은 세그(SEG)플라자다. 5층 건물 전체가 핸드폰 매장들로 가득한 소비품시장의 전형이다. 그러나 한두 블럭 떨어진 곳에는 펑진산상가처럼 전자부품 판매 위주의 생산재시장이 공존한다. 화창베이가 전체 산업사슬을 아우르는 제품시장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특히 놀라웠던 건 화창베이가 1~2시간 가량 떨어진 외곽지역의 제조업체들과 유기적인 연계를 맺고 있는 점이었다. 화롄파(華聯發)타워에서 만난 쑤더쥔(蘇德軍ㆍ25)씨는 “동료 촹커(創客ㆍ창업자)들과 아이디어를 교환한 뒤 이를 주문하면 2,3일쯤 지나 시제품을 받아볼 수 있다”면서 “인근에 촹커들과 연계해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을 갖춘 제조업체가 많다”고 말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곧바로 제품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짐작케 하는 얘기다.
이튿날 방문한 차오펑(喬豊)과기실업은 유명 자동차ㆍ전자회사 등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견기업이면서 동시에 화창베이 촹커들과의 연계성이 높은 대표적인 제조업체다. 차오펑실업은 자체적으로 아시아 메이커 센터(AMC)라는 이름의 창업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아이디어의 주문제작에 그치지 않고 전도유망한 촹커들의 초기 창업 과정을 적극 지원하는 후견인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차오펑실업은 지난해 거액을 들여 아시아권 최대 규모의 3D프린터를 갖췄다. 생산공정 디지털화와 함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최단시간 내 완제품 생산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50여명 규모의 자체 디자인실도 운영하고 있다. 류하이두(劉海杜) 이사는 “앞으로는 분야와 상관없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얼마나 빨리 현실화하느냐가 기업과 국가 경쟁력의 관건”이라며 “젊은 촹커들과 탄탄한 제조업체들간 유기적인 연계가 선전의 혁신동력”이라고 자평했다.
실제 ‘촹커의 천국’으로 불리는 화창베이는 화웨이(華爲)와 텐센트,JDI 등 초우량 젊은기업들이 탄생한 곳이다. 이는 부품 공급망과 시제품 생산라인 등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산업생태계가 집약돼 있기에 가능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여기에다 화창베이국제촹커센터를 비롯한 다양한 규모와 운영방식의 창업ㆍ혁신센터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매일 수십만명이 오가는 화창베이 중심가 대로변엔 유망한 스타트업 기업을 홍보해주는 대규모 부스가 마련돼 있기도 하고, 사이거(塞格)전자상가 등지에는 3D프린터를 갖춘 프로토타입 제작소가 자리잡고 있어 아이디어가 곧바로 현실화될 수도 있다.
中 “제조업, 양에서 질로 승부”
작년 발표 ‘중국제조 2025’ 전략
IT와 융합 확대 전 제조업 혁신
정부, 재정ㆍ세수ㆍ금융 전방위 후원
全제조업 혁신으로 ITㆍ제조업 융합 확대
중국이 근래 경기 둔화세를 겪는 와중에도 선전은 지난해 8.9%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해 전체평균(6.9%)을 훨씬 상회했다. 특히 전자부품과 3D프린터, 드론, 로봇 등 첨단기술분야의 성장률은 전국평균의 두 배에 육박한다. 화창베이와 주변 제조업체들을 중심으로 한 선전은 ‘중국제조 2025’를 통해 제조강국의 꿈을 키우는 중국 정부의 모델로 평가받는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중국제조 2025는 올해부터 시작된 제13차 경제ㆍ사회발전 5개년 계획(13ㆍ5 규획)의 제조업 분야 기본 방향이다. 지금까지 산업분야ㆍ업종별로 중점 발전 전략을 제시한 것에 비해 이번엔 제조업 전 분야를 망라한 혁신전략이라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이는 저임금에 기반한 노동집약산업을 중심으로 양(量)으로 승부해온 중국 제조업이 이제는 질(質)로도 승부하겠다는 ‘제조업 통합챔피언’ 전략인 셈이다. 물론 세계 최대 제조강국이 되겠다는 시점을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으로 설정한 데에선 다소간의 정치적 색채가 묻어나기도 한다.
중국제조 2025를 실현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전체 제조업의 4대 공통과제를 제시했는데 특히 IT와의 융합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주요 제조ㆍ공정 과정에서 지능형 생산시스템(IMS)을 구축함으로써 비용ㆍ품질 등에서 한단계 도약하겠다는 이 같은 계획은 ‘인터넷플러스’와 같은 정부 주도 정책과 동시에 텐센트ㆍ알리바바ㆍ화웨이 등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ICT 기업들과의 유기적인 연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
중국은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을 ‘시장 참여자’에서 ‘게임 룰 제정자’로 국한하겠다면서도 재정ㆍ세수ㆍ금융지원 역할은 더욱 강화할 태세다. 시장 역할 확대와 대외개방의 폭을 넓히되 중국 당국의 ‘계획’하에 제조업의 질적 전환을 추동해내겠다는 취지다. 제조업 전체 혁신을 강조하는 가운데 차세대 정보기술 산업과 신소재, 항공우주장비, 바이오ㆍ의약, 선진궤도교통 및 신에너지자동차 분야 등 10대 산업 중 발전계획을 별도로 제시한 건 이 때문이다.
선전(중국)=양정대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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