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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정치 협상은 변하는 게 없다

입력
2016.06.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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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 없는 혁신인데 정치만 별세계

벼랑 끝까지 가보는 비효율성 팽배

탁월한 협상력 갖춘 정치인 아쉬워

국회 의장단 선출 법정시한인 7일 국회 본회의장이 임시회가 열리지 못해 의원석이 비어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국회 의장단 선출 법정시한인 7일 국회 본회의장이 임시회가 열리지 못해 의원석이 비어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숭례문 근처 삼성본관 건물 앞 화단에 핀 꽃은 여러모로 색다르다. 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서 내려 회사로 가는 출근길에 마주칠 때마다 요상하게 생겼다는 느낌을 받았다. 짙붉은 꽃잎이 매번 바쁜 걸음을 멈추게 한다. 잎은 하나도 없는 가냘픈 줄기 꼭대기에 덩그러니 붉은 얼굴만 내밀고 있다. 요염한 자태다. 며칠 전에야 정체를 알았다. 양귀비, 화훼용으로 만든 꽃양귀비다. 당나라를 기울게 한 현종의 여인 양귀비가 왜 저 양귀비와 어울리는지 알겠다.

봄마다 피는 이름 모를 꽃을 알아보려 애써 식물도감을 들출 필요가 없다. 낯선 꽃 이름을 줄줄 외는 지인의 신통방통에 경탄을 금치 못했지만 이젠 물어볼 이유가 없다. 어느 포털사이트 앱이 그 역할을 한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얼굴 인식하듯이 꽃 이름을 전해준다.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여져 금상첨화다. 이런 시대다. 소비자의 니즈(Needs), 가려운 곳이 어딘지 파악하고, 해소해주는 시대. 혁신이 어디 이뿐이랴. 열거하자면 뒷북 치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꽃 이름 알려주는 앱도 나만 이제 알았지 나온 지 오래라고 한다. 오류가 있다고 하지만 나 같은 문외한에겐 뒤늦게나마 느끼는 신세계다. 이런 혁신 없이는 살아 남지 못하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혁신은 일어나고 있다.

생활을 바꾸는 기업의 혁신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흔히 하는 말로 ‘기ㆍ승ㆍ전-정치’다. 현실과 겉도는 정치는 답답함을 넘어선다. 여야가 난항을 겪고 있는 원 구성 문제야말로 국민생활과 아무 관련이 없다. 여야가 조그만 이득이라도 더 취하기 위해 벌이는 자기네끼리의 싸움이다. 원 구성이 늦어져 지각 개원을 하는 사태가 20년 이상 계속돼 왔다면 정치인의 사고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근본 원인은 정치 협상에 있다고 본다. ‘한국인은 협상에 약하다’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분야다. 자존심을 세우고, 끝장을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심성과도 맞닿아 있다. 손해는 조금도 못 참고 빌미만 잡히면 협상 테이블을 엎어버린다. 예컨대 국회의장을 갖겠다는 여당의 고집에 맞서 야당은 자유투표를 합의하고, 이에 여당은 한동안 협상을 보이콧했다.

어느 일방을 탓하는 게 아니다. 상호 신뢰와 신의성실의 부족, 대화의 부족, 타협 의지의 부족 등 얕은 협상 자질과 불성실한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원 구성 협상 파행을 원내대표의 재량권 문제로만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서투른 정치 협상의 폐해는 심각하다. 언론의 관심으로 생중계되다시피 하는 정치 협상의 분위기는 노사를 포함한 사회 전반의 협상에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이다.

뉴욕을 방문 중인 이해찬(무소속) 의원은 최근 “외교관은 정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불 붙고 있는 ‘반기문 대망론’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한 말이다. YS식의 정치적 돌파력과 대비시켜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지 않는 사람들이라고도 했다. 상황을 타개하는 결단력이 큰 정치적 덕목이기는 하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건대 허구한 날 여야 협상이 있었다. 협상을 엉터리로 했다며 ‘사쿠라’라는 욕을 듣거나, 원내대표직을 내놓아야 하는 일은 있었어도, 협상력이 탁월하다는 평을 듣는 정치인은 보지 못했다.

청와대나 당의 정체성 때문에 원내대표가 협상력을 제약 받고, 운신의 폭이 좁았던 탓도 있다. 하지만 여야의 사고가 전반적으로 경직된 게 더 큰 문제다. 협상은 이익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득을 취하고자 하면 마땅히 손해도 감수할 자세가 돼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특정 사안이 합의에 걸림돌이 될 때 테이블 밑에 놓아두고 숙성시킬 여유도, 꾀도 없다. 그러니 진이 빠지고, 벼랑 끝까지 가고 나서야 겨우 길이 보이는 정치 협상의 비효율성이 반복된다. 이제는 정치 협상도 혁신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 정치적 결단보다 탁월한 협상력을 갖춘 정치인, 지도자가 나와야 하는 시대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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