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조 현물출자 먼저 나서
자본 규제 ‘바젤Ⅲ’ 요건 충족
이후 한은의 대출 10조 포함해
산은-수은의 코코본드 매입키로
한은 직접 출자 가능성 열어놔
야당 등 정치권 반대는 숙제로
8일 확정된 ‘12조원+알파(α)’ 규모의 국책은행 자본확충방안의 핵심은 정부가 1차로 직접출자를 통해 선봉대로 급한 불을 끄고, 한국은행과 공동으로 조성한 자본확충펀드에 본대(本隊)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정부와 한은이 한발씩 양보해 타협에 이르렀지만, 실제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여전히 발권력 동원 논란 및 정치권의 반대 등의 과제를 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본확충 어떻게 이뤄지나
규모 면에서 자본확충 방안의 핵심이 될 자본확충펀드는 11조원으로 조성되는데, 한은의 대출(선순위)이 10조원, 기업은행을 통한 정부의 지원(후순위)이 1조원을 차지한다. 이 자본확충펀드가 산은ㆍ수은의 코코본드를 사서 자본 비율을 높여주는 구조다.
정부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자본확충펀드의 규모를 크게 잡아 뒀을 뿐 실제론 11조원이 다 소요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은행자본확충펀드(은자펀드) 역시 20조원이 조성됐지만, 실제 지원은 3조9,000억원에 그쳤다.
자본확충펀드 조성에 앞서서는, 정부가 직접출자에 나서 먼저 급한 불을 끄게 된다. 정부가 직접출자에 우선을 두게 된 배경은 2013년 12월부터 시행된 바젤Ⅲ 자본규제 때문이다. 바젤Ⅲ에 따르면 금융기관은 자본금이나 이익잉여금에 해당하는 보통주자본 비율을 4.5% 이상으로 유지해야 하는데, 자본확충펀드를 통해 조성한 신종자본증권(코코본드)는 이 요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코코본드나 후순위채만으로 국책은행 자본을 늘린다면 외형적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맞출 수 있어도, 자본구성에서 바젤Ⅲ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정부는 우선 올해 내에 수은에 1조원을 현물출자하기로 했다. 수은에 우선적 지원이 이뤄지는 것은 수은의 BIS 비율이 3월말 기준 9.9%로 떨어져 자본확충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1조원을 현물출자하면 금년 중 수은 BIS 비율을 10.5% 선에서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내년에는 예산을 통해 수은ㆍ산은에 현금 출자가 이뤄진다.
한 발씩 양보, 여전한 발권력 동원 논란
한은의 직접출자 여부 등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던 정부와 한은은 한은의 직접출자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다. 정부가 자본확충펀드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한은 역시 수은에 대한 직접 출자 가능성을 언급하는 식으로 한발씩 양보했다는 관측이다.
다만 재정당국과 금융당국이 모처럼 중지를 모은 합의안이 나왔음에도, 정부의 책임인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한은 발권력이 동원된다는 근본적인 논란이 여전히 남았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등이 구조조정 재원 마련에 한은이 참여하는 상황을 강하게 반대해 왔는데,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7일 “1980년대에 한은에서 무조건 발권해 그걸로 부실기업 손실을 메워 나가는 역할을 했는데 그런 악몽이 다시 살아나지 않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한은은 기준금리에 맞춰 돈을 풀거나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을 위해 한은이 추가로 돈을 찍어낸다는 시각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리스크를 줄이고 위법 요소를 피하기 위해서라지만, 자산관리공사(특수목적법인 설립) 신용보증기금(한은 대출 보증) 기업은행(도관은행) 등 공기업이 줄줄이 동원된 것도 지적받는 부분이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공기업을 동원한 것은 향후 문제 발생시 정부의 책임을 피해가기 위한 것이라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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