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 4고(苦)를 겪는다고 한다. 1, 할 일이 없어진 것. 2, 건강악화. 3, 경제적 어려움. 4, 고독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1, 2, 3번은 사람이 그리고 사회나 국가가 어찌해 볼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4번은 부자도 국가나 사회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 고통이다.
나도 늙어 보고 나서 알게 됐지만, 늙은이는 사랑받는 존재가 못 된다. 사랑 중에도 가장 진하고 푸근한 내리사랑이 깡그리 없어져 버린다. 부모는 물론이고 나를 보살펴 주던 윗사람들 사랑의 손길이 사라져 버렸다. 남성보다 평균 7, 8년이나 더 사는 여성들 대부분은 반려마저 먼저 보내야 하는 슬픔이 보태져 있다.
‘치사랑’이라 일컫는 아래 사람들이 올려보내는 사랑이 남아 있긴 하다. 그런데 이 치사랑이란 게 마냥 기대고 어리광을 떨어도 되는 것이 못 된다. 윗사람으로서의 염치와 절제가 요구되는 서늘한 사랑이다. 그래서 치사랑 속에 쌓여 있으면서도 노인들은 외롭다고 고독하다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러 대고 있다.
게다가 사랑을 줄 대상도 없어졌다.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은 나의 다 늙은 내리사랑을 저들, 젊은이들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어쩌면 부담스러워하기까지 한다.
왜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주지도 못하게 되었을까. 누군가 늙어서 받는 고통이 몽땅 젊었을 적에 잘못 살아온 대가요 복수란다. 그러고 보니, 지난 세월, 우리는 그저 내 자식만, 내 가족만 챙기고 잘 되라는 거기에만 올인하는 경직된 ‘가족이기주의’에 매몰돼 살아오지 않았던가. 앉으나 서나 그저 내 자식, 내 새끼만이 잘 자라 주고, 좋은 학교 합격하고, 좋은 직장 들여보내고, 결혼 잘 시키고…. 그러는 사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말든지…. 좁디좁은 시야에 갇혀 살아왔다. 그런 부모 밑에서 이기주의자가 되었을 자식들로부터 받는 서늘한 치사랑에 우리 노년들은 치를 떨며 고독에 몸부림치고 있다.
내 고교동창은 일찍이 통신사에 근무하다가 그 시절에는 흔치 않던 외국인 직원과 사내 결혼을 했다. 내 친구는 무슨 열렬한 이념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천성적으로 열린 품성을 지닌 친구였다. 결혼 초기 아동상담소에 근무하던 친구 따라 영아원에 갔단다. 요람 속에 아기들이 포개지다시피 빼곡히 누워 있는 가운데서 한 아이만 요람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바닥에서 울고 있더란다. 그 아기를 버쩍 안았더니, 폭 안기더란다. 망설임 없이 그 아기를 안고 집으로 왔다. 결혼 6개월 만에 혼혈아기를 갖게 된 셈이다. 그 후 친구는 아들과 딸을 낳아 키웠다. 막내를 낳고 7년, 무료하기도 하고, 세상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인 아기 기르기를 한 번 더 하기로 마음먹고, 아기 한 명을 정식으로 입양했다. 이번 아기는 한국아기였다.
지금이야 신애라, 정혜영 같은 탤런트가 입양을 많이 해서 사회의 칭송이 자자한 시대지만, 1960, 70년대에는 별스런 일이었다. 근데 다 늙고 보니까 내 친구는 외로울 새가 없이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자식 키운 재미를 즐기고 있다.
누구나 입양을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입양까지는 아니더라도 옆 사람에게 더러 눈길이나 손길만 내밀어도, 늙어 고독에 떠는 처지는 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가 내 자식 내 식구에게만 눈길 손길을 주다 보니, 뒤늦게 사람이 고프고 사랑이 고픈 거 아닐까.
노년의 고독을 승화해주는 또 하나의 넓고 트인 사랑에 우리는 모두 눈길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별로 아쉬워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는 내 새끼들에게만 퍼부어대는 내리사랑은 더러 절제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절제는 관계를 매끈하게 매만져 줄 것이다.
노후의 독립과 치사랑, 그리고 내리사랑 사이에서 황금분할선을 찾아 나서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고광애 노년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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