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내를 위해 향수를 샀다. 이 향수의 특징은 5개의 향수가 개별 향을 갖고 있지만, 사용자가 향을 섞어서 자신만의 향을 만들어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여러 스타일의 옷을 겹쳐 입음으로써 특유의 매력을 발산해내듯, 향도 겹쳐 입을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영어에서 향수를 뿌린다는 표현을 ‘Wear Perfume’이라고 한다. 향은 옷처럼 입는 것이다. 코코 샤넬은 ‘향수의 도움 없이는 우아함은 불가능하다’라고 천명했다. 향수를 뜻하는 ‘Perfume'은 ’연기를 통해 지나간다‘는 의미의 라틴어 ’Per Fumare'에서 왔다.
우리가 향수로 알고 있는 것은 과거에 향이 많은 식물의 수지로 만든 향료다. 그 향을 태워서 몸에 훈증하듯 입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연기를 통해 인간 몸의 표면 위로 지나가도록 한 것은 무엇일까? 향의 근원이 되는 꽃들은 자기만의 향을 통해 수분을 매개해줄 곤충을 끌어들인다. 수컷 꿀벌들은 난초 꽃잎을 긁어 수집한 향을 성적 유인 물질로 전환해 쓴다. 다음 세대의 종자를 늘려나가기 위한 신호를 보내는 전략적 행위다. 결국 꽃과 곤충 사이, 향은 사적이고 은밀한 의사소통의 창구가 된다. 꽃의 상층부가 머금은 향기 분자가 꽃의 표면을 떠나 공기와 뒤섞이면 벌을 비롯한 곤충들은 시각과 기억, 학습에 힘입어 향기를 내는 꽃을 찾아간다. 진화론적으로 자연선택에 의해 연마된 곤충들의 후각능력은 4억년 이상을 걸쳐 형성된 것이다.
우리 인간이 각자의 향과 체취에 따라 누군가에게 이끌리는 건 태곳적의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루소는 ‘에밀’에서 ‘후각이란 상상의 세계에 영향을 주는 감각’이라며 향에 대한 옹호론을 폈다. 상상을 통해 인간의 삶에서 가능성의 다양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듯, 상상력을 촉발하는 향은 그 자체로 세계를 향해 닫혀있는 나를 여는 열쇠인 셈이다. 옷은 그 자체로 시각적 자극물이며, 직물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천의 표면을 만질 때 느껴지는 감각 등, 시각과 청각, 촉각과 같은 다면적 감각의 세계를 표현한다. 여기에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인 후각이 결합될 때, 우아함이란 탁월함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샤넬이 말하는 우아함의 필수조건 향수는 이러한 맥락에서 사용된 게 아닐까 싶다.
조향사들은 시간과 온도의 변화에 따른 향의 변화를 ‘노트(Note)'란 단어를 써서 표현한다. 탑 노트란 향수 용기를 개봉하거나 피부에 뿌릴 때 처음 맡는 향의 느낌을 뜻한다. 주로 감귤껍질이나 생강뿌리를 재료로 날카롭고 신선한 향을 만든다. 미들 노트란 향수의 구성 요소들이 조화롭게 배합을 이룬 중간 단계의 향을 의미하는데 뿌린 후 30분 정도가 지나야 하고 심지어는 1시간 뒤에 드러나기도 한다.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신선하고 가벼운 탑 노트가 증발하면 향수의 심장이랄 수 있는 세련되고 그윽한 중간향이 나가는데, 문제는 향 입자들이 향수 사용자 주위의 허공으로 나가기를 망설이기 때문이란다. 베이스 노트는 향의 마지막 느낌을 뜻하는데 자신의 체취와 향이 하나가 되면서 독특한 자신만의 향취를 발산한다. 두세 시간이 지나야 이 향이 난다. 이 베이스 노트는 풍부하고 복잡한 동물성 향이 기조를 이루며 심지어는 약간 불쾌한 느낌마저 자아낸다고 한다.
노트란 단어에는 말투, 생각, 징후, 음악의 음표와 같은 의미가 담겨있다. 단어의 깊은 의미에서 유추할 수 있듯, 향수를 뿌린다는 것은 그저 좋은 냄새를 몸에 입히는 것을 넘어, 한 인간의 인상을 음악처럼 작곡하는 일이다. 향의 변화를 인간의 이해에 접목해 보면 어떨까? 첫인상과 몇 번의 만남, 이어지는 지속된 만남을 통해 우리는 한 인간에 대해 인상을 만들고 정리한다. 신선했던 첫 만남, 몇 번의 만남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한 인간의 가능성과 내공, 지속된 만남과 교류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되는 한 인간의 진상과 씁쓸한 뿌리, 이렇게 향수의 발향과정은 우리에게 인간이 인간을 만날 때, 시간에 따라 발산해야 할 향의 묵직한 본질을 말해준다.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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