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팔방에서 청탁이 와서 선택과 집중을 못했다. 내가 제너럴리스트(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전문가)가 된 건 이 때문이다.”
노교수는 더 없이 바빴던 자신의 학자 인생을 주저 없이 “실패했다”고 정리했다. 이는 사실 다방면 분야에서 업적을 쌓았던 교수가 자신의 삶에서 찾아 낸 역설이다. 주변에서는 그를 국제정치학계의 스페셜리스트(한 분야를 깊이 아는 전문가)이자 정치 사회 전반을 다루는 탁월한 제너럴리스트로 평가하지만, 조금 더 스페셜리스트가 됐어야 한다는 아쉬움의 토로이기도 했다. 7일 고별강연을 가진 문정인(65)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이야기다.
문 교수가 2016년 1학기 ‘국가안보와 정보’ 수업을 마지막으로 정년 퇴임한다. 미국 매릴랜드대에서 처음 강단에 선 지 35년 만이다. 퇴임 후에도 문 교수는 명예특임교수로 연세대 국제캠퍼스에 남아 5년 더 강좌를 맡을 예정이지만 정식 교수로서의 강의는 이날이 마지막이었다.
제자들은 그를 쉬이 떠나 보내기 싫었던 것 같다. 고별 강연이 열린 연세대 연희관 402호 강의실에는 100명이 훌쩍 넘는 학생과 동료들이 자리했다. 화려했던 그의 이력답게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봉현 전 호주대사 등 정계, 학계 인사들도 자리를 빛냈다.
이런 환대는 학자로서 문 교수의 업적이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외교안보와 국제정치학 연구자였고, 국제정치학계의 글로벌 마당발답게 미국 국제정치학회(ISA) 부회장 및 세계국제정치학회(WISC) 공동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글논문, 영어논문이 340여편, 단행본, 공저, 편저 등도 70권에 달한다. 특히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는 공직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했다. 김대중정부에서 햇볕정책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일조한 그는 민간인 신분으로는 유일하게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모두에서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했고, 노무현정부 때는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도 지냈다.
그럼에도 끝까지 강단도 지켜 지조 있는 학자라는 평판도 얻었다. 문 교수는 강연에서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장과 안보실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있었지만 거절했다”며 “대단한 철학적 원칙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학교를 지키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제자들은 문 교수와의 이별이 못내 아쉬운지 고별강연 마지막까지 질문을 쏟아내며 스승의 총기와 지혜를 붙잡고 늘어졌다. 한 참석자가 박근혜정부가 남북관계를 풀어갈 수 있는 해법에 대해 질문하자 문 교수는 “개성공단 폐쇄와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정부에 대한 시민, 사업자, 북한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면서 “개성공단은 북한과의 소통 채널이다. (대북정책에서) 죽일 것과 살릴 것을 신중하게 가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에 대한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는 제언도 내놓았다. 문 교수는 “외교부가 지나치게 북한 제재에 집착하는 것 같다”면서 경색된 남북관계에 우려를 드러냈다. 이어 그는 “현 국면에서는 ‘전환 외교’가 필요하다. 북한과 어떻게 대화와 협상의 외교로 전화할 수 있도록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열띤 토론 속에서도 틈틈이 자신이 학자로서의 아쉬움에 대해서도 돌아봤다. 후배 교수들과 제자들이 똑 같은 실수를 답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는 “나만의 시간을 갖고 나만의 연구를 할 시간이 부족했다. 내가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가 된 이유”라고 말했다.
고해성사를 마친 문 교수는 이제 진짜 자신만의 연구에 파묻힐 작정이다. 그는 “10년 동안 이제까지 쓰지 못했던 생각을 정리해 매년 1권의 책을 내겠다”고 선언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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