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은 기록광이라 엄청난 양의 메모를 남겼습니다. 옛 영어로, 그것도 과학에 대해 휘갈겨 쓴 메모다 보니 엄청 까다롭습니다. 연금술에 대한 몇몇 메모는 지금도 해독불가입니다. 1차 사료에 해당하는 이 모든 메모를 다 찾아서 해독하고 분류, 정리한 뒤 쓴 책입니다. 압도적 연구량 때문에 숭고미를 느낄 정도였습니다.”
7일 전화로 연결된 번역가 김한영씨는 아직도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다. 이번에 번역한 책은 뉴턴의 생애를 그린 4권짜리‘아이작 뉴턴’(알마). 17세기 과학사 전문가인 리처드 웨스트폴이 20여년의 시간을 쏟아부어 1980년 펴냈고, 지금까지도 뉴턴은 물론 17세기 근대과학에 관한 최고의 책이라 격찬받고 있는 책이다. 김씨는 “모든 메모를 다 검토한 저자답게 뉴턴이 누구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 지에서부터, ‘프린키피아’ 1ㆍ2ㆍ3판에 따라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미적분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뉴턴이 어떤 실수를 저질렀고 이를 어떻게 고쳤는 지까지 모두 밝혀뒀다”고 전했다.
김씨가 번역을 시작한 건 3년 전. 책의 분량으론 번역에 들일 시간이 7개월이라고 봤지만, 과학 분야에서 워낙 잘 썼다고, 또 워낙 까다롭다고 유명한 책이라 하니 5개월 더 쳐서 내심 1년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실제 걸린 시간은 2년이었다. 워낙 방대한 자료에 토대를 두고 있다 보니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단단해서 이를 읽기 쉽게 옮기는 게 어려웠다. 17~18세기 옛 영어로 표기된 문장 하나 옮기기 위해 몇 달을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스스로도 스티븐 핑커 책을 잇달아 번역하는 등 과학 전문 번역가로 한국출판문화상 번역부문 수상자이기도 했지만, 물리학ㆍ광학 부문은 과학서 전문 번역자 김희봉씨에게서, 전반적 수학적 논리는 ‘프린키피아’, 갈릴레이의 ‘대화’ 등을 번역한 이무현씨에게서 도움을 받았다.
김씨에게 ‘인간’ 뉴턴은 어떤 사람으로 비쳐졌을까. 의외로 “뉴턴에 대한 신격화는 완전한 오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씨는 “좋게 말해 신중한 성격이고 나쁘게 말하면 쪼잔한 사람이었다”면서 “특히 명예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졸렬한 면모까지 있었던 평범한 남자”라고 평했다. 김씨는 이를 ‘출신 콤플렉스’로 봤다.
뉴턴 집안도 나름 잘 사는 최상위 농부집안이었지만 귀족을 앞지를 순 없었다. 김씨는 “젊은 시절 기독교 이단이던 아리우스파를 신봉하는 등 과학 못지 않게 신학이나 연금술 같은 신비주의에 빠져든 것도 아마 신분 문제에서 나오는 불만 때문이었을 것”이라 말했다. 안 그래도 소심한데다 자신의 불만과 이단적 취향까지 감추려니 과학자로 명성을 얻은 뒤 오히려 더 폐쇄적이고 완고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번 ‘아이작 뉴턴’은 알마의 ‘에센시아’ 기획의 첫 책이다. 에센시아는 번역이 안된책 가운데 소장가치가 확실한 고전을 끄집어려는 시리즈다. 소장 가치를 높이기 위해 판화에서 쓰는 실크스크린 방식을 쓰고, 표지의 검은색과 붉은 색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색을 칠하는 대신 아예 검은 색 붉은 색 색지를 쓰는 등 만듦새 자체에도 적잖은 공을 들였다. 손에 받아 든 질감이 다르다. 초판 1,200부에만 적용되는 디자인으로 책마다 일일이 번호도 부여해뒀다. 후속작으로는 노엄 촘스키의 ‘통사구조론’ 등이 대기 중이다. 알마 관계자는 “다행히 예약판매 때 애서가들을 중심으로 좋은 반응이 나왔다”면서 “한국 독서시장을 한걸음 더 넓히는 데 기여하는 책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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